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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Jun 01. 2023

--근황, 연재 예고--

앞으로 쓸 글의 주제를 고민해 보고 돌아왔습니다.

"시가 죽어가는 시대에 시를 쓴다는 것. 예술이 죽어가는 시대에 예술을 한다는 것."


이창동 감독이 안타까운 얼굴로 이리 말하는 영상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요즘 글을 쓰는 것도 잠시 멈춘 채 머릿속으로 열심히 맞춰보던 생각의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 여기에 있더군요.  


브런치를 시작하고는 제 머릿속에 있는 것을 존재하는 그대로 민낯으로 꺼내놓는 글을 썼습니다. 글을 하나 쓰고 나면 하루 이틀은 반드시 끙끙 앓았고요. 경험과 체력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생각과 감정을 글의 형식으로 정확히 풀어넣으려 노력하는 것의 에너지 소모가 생각보다 엄청났습니다. 평소에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편이 못되어서 더 힘들었나 싶네요.


이제까지처럼 감성적이고 작품성도 추구하는 시적인 글을 쓰는 것, 이런 글을 더 잘 쓰려고 하는 것이 저에게 가장 잘 맞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저의 얘기에 공감해 주신, 앞으로 해주실 분들도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독자에게 말을 걸지 않고 순전히 저만 아는 구구절절한 감정들을 터트리고 있는 불친절한 글들도 많았는데, 그런 글들은 저의 가족이나 친구, 지인이 아닌 다음에야 크게 관심 없지 않으셨을까 싶더군요. 그래도 제가 글을 쓰려고 하는 이유를 구체화하고 보다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수 있던 것은, 결국 뭐든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저를 위해 하나씩 써가는 고된 시간이 있었던 덕입니다.   


변화하는 시대를 끌어안고 저의 꿈을 이뤄보려 합니다. 꿈이란 결국, 외면을 무릅쓰고 누군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를 던지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대신하는 것으로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 이 시대가 권하는 모든 방법을 이용하여, 도태되어 죽어가는 진정성 있는 예술의 가치를 회생시키고 또한 진화하게 돕는 것. 이 정도로 패기 넘치게 설명될 수 있겠습니다.


마음을 다독여 주며 오래도록 그 안에 잔존하여 자라나는 의미 있는 예술의 매너는 지금의 대중에겐 고루하고 불편합니다. 지루하고 어렵죠. 외롭고 힘들지 않은 이가 없는 세상임에도, 모두 그저 쉽게 도피하려 듭니다. 그렇게 병든 마음이 갈 곳을 잃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저 역시 길을 오랫동안 잃었었기에 더 그렇습니다.  


쉽고 재미있지 않아 다가가기 싫은 망설임의 허들을 뛰어넘어 깊은 의미를 얻는 것을 즐기는 소수는, 스스로 힘 있게 우뚝 서서 세상을 통찰합니다. 허무하게도 그 깊이 있는 통찰은 아름답게 포장된 자극적인 이야기에 묻혀버립니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사랑도 아름답지만, 쉬운 자극에 초점을 맞춘 채 단편적으로만 소비된다면, 눈물조차 말라버려 소리 없는 마른 울음을 터트리며 주저앉아야 하는 사랑은 어디에 구구절절 위로를 구해야 구해집니까? 미라클 모닝이나 규칙적인 운동 같은 것의 장점을 알리고 동기부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힘들어서 아침에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사람이나 들뜨고 기쁜 마음에 알람도 없이 일찍 일어나 행복감을 만끽하고픈 사람의 마음을 깊이 있게 공감해 주는 것은 예술작품입니다.


신시대의 소모적인 디지털 예술의 근간, 순간의 주의를 끄는 것보다는 길게 몰입하며 곱씹는 가치에 집중하는 묵직한 예술. 소통할 수 없다면, 아무도 몰입할 의지가 없다면, 다시 말해 소비되지 않는다면, 썩어버립니다. 이대로 서서히 죽어 과거가 되는 걸까요?


그렇게 쉽게 사라지게 내버려 두기엔, 저는 역사가 효용을 증명하는 예술의 소통방식을 빌어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도 많습니다. 사유의 확장, 그리고 보다 넓고 따뜻한 세계를 원합니다. 저는 지금껏 평생 예술인이었습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예술을 미국과 한국 두 나라에서 학습하고 추구해 왔고,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법 역시 배워 그것으로 돈을 벌었습니다. 그렇게 여태껏 갈고닦은 몇 가지 재주와 그 간의 경험을 무기 삼아, 제가 할 수 있는, 인간이 인간이기에 가치 있는 일들을 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의 언어, 나의 소통이 어떻게 나의 환경과 시대에 맞추어 변화해 왔는지, 어째서 어느 순간 한계라며 적당히 포기해 버렸었는지, 그 모든 과정 속의 깨달음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현시대를 구슬려 설득해 볼 생각인지, 무모하게 용감하여 여태 포기도 타협도 못한 채, 다시 한번 예술을 논해보겠노라 말하는 미련함은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등. 후에 정리하여 작은 책의 형식으로 묶어 볼 수 있도록 이런 주제 안의 이야기를 당분간 풀어가 보려고 합니다.


흔한 듯 특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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