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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Apr 16. 2023

와인잔 사이로 엿 본 홍조 띤 사랑의 출처.

어른이란 그저 점점 더 외로워지는 존재가 아닐까.

마음 가벼운 수요일 저녁이었다. 연약함에도 풍성한, 노을을 기다리는 벚꽃나무를 지나, 집에서 멀지 않은 세련된 이탈리안 식당을 향했다. 특별하게 장식된 우아한 창가 쪽 자리로 안내받았다. 크고 오래된 느낌의 나무창틀이 마음에 쏙 들었다. 해가 지기 시작한 청초한 창 밖 풍경 속 조금 전 지나쳤던 벚꽃나무가 아름답다. 붉은 장미 한 다발 같은 운명을 만난다면 이런 곳이 좋을 것이다. 


우리 셋은 비슷하지만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들떠있었다. 아름다운 식당의 분위기에 취해 밥도 잊고 와인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한두 잔 이상의 술이라는 게 늘 그렇듯, 만나고 있는 이들과의 시간을 위해 마시는 건지 본인을 위해 마시는 건지 구분하기가 애매하다. 술을 끊임없이 마시며 취해간다는 것은 베인 상처에 소금을 부어가며 각자의 머릿속에 잠들어있던 온갖 상념들을 흔들어 깨워 대화하는 과정이다. 많은 이들은 결국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를 생각의 늪에 고립시킨 채 자신의 이야기를 앞뒤 없이 허공에 뿜어낸다. 다른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혼자인 채다. 마주친 그 눈은 내 동공에 비친 자신을 찾고 있다. 그런 모습은 즐거워 보이기도, 아파 보이기도, 용감해 보이기도, 때로는 많이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내가 둘러보는 모든 것들의 초점이 영 흐릿해질 무렵이었다. 둘은 격양되었다. 그들은 몸 안에 술이 들어차는 만큼 품고 있던 불덩어리를 토해내었다. 시니컬하게 미간을 찡그리며 세상에게 받는 아픔을 한숨으로 내뱉었고, 그와 동시에 그들의 아픔을 치유해 주는 존재를 예찬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험하고 아프기만 한 일상인데 열정과 (돈과) 사랑을 쏟을 대상이 있어 버틸 수 있다고, 행복이고 기쁨이며 평화라고 한다. 어디서 이런 거 많이 들어봤는데. 


음, 취기가 돌기 시작했다. 보상을 바라지 않고 무작정 사랑을 퍼부을 수 있는, 안전하게 사랑할 대상.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애초에 짝사랑은 취향도 아닌지라. 하지만 나는 테이블 위를 오가는 그 뜨거움이 부러웠다. 도무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압도적인 에너지가 아름다웠다. 그와 동시에 소외되었다. 아니, 투명한 결계를 치고 스스로를 공간에서 분리한 채 철저한 3자가 되어 관조하기 시작했다. RadioHead의 No Surprises 뮤직 비디오처럼, 멍하니 둘에게 시선을 둔 채 혼자만의 노래를 하며, 나는 천천히 물에 잠겼다. 


술에 취해 물 안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 들 땐, 스무 살 갓 어른이 된 나에게 나보다 열 살쯤 많은 선배들이 만들어주었던 폭탄주가 생각난다. 술자리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달아오르면 양주잔을 일렬로 줄 맞추어 붙여 사람 수만큼 늘어놓는다. 그 위 잔과 잔 사이마다 작고 날씬한 샷 잔을 올려놓는다. 손재주와 눈썰미가 영 부족한 나는 아직도 그 뒤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선배가 찰랑대는 첫 번째 샷잔에 무협지 주인공처럼 재빠르게 섬세한 충격을 주니, 도미노처럼 모든 샷잔들이 순식간에 쓰러지더니만 각각의 양주잔 안에 하나씩 떨어져 거품을 일으키며 안착했다. 어린 내 눈에 그 장면은 멋진 어른의 모습의 대명사 같은 것으로 각인되었다. 어른이란 한 번에 열 잔 정도의 양주 폭탄주를 만드는 쇼를 매일같이 자신 있게 펼치는, 호기롭고 폼나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의례적인 과거 회상을 하며 괜한 아련함에 휩싸이는 동안, 둘은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갔다. 별 흥미로운 이야기도, 깊은 의미도 없다. 무엇이든 구실만 있으면 사랑을 토해내는 것이 전부다. 그것에 서로 공감한다. 더욱더 사랑할 방법을 모색한다. 반짝이는 해맑은 눈빛에 생기가 가득하다. 그렇게 울고 웃으며 술잔은 계속 비워졌다. 


어른이란 그저 점점 더 외로워지는 존재가 아닐까. 곁에서 숨 쉬는 이들, 일상을 채우는 일들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외로움이 계속해서 찾아오는 것. 옥죄이는 일상 속에서 그 고독을 해결하지 못해, 무책임하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초월적인 대상을 하염없이 찾아 나서보는 것. 그렇게 행복해질 방법을 찾는 것. 


다른 이들의 행복이 예기치 않게 녹은 치즈처럼 엉겨 붙는 저녁식사였다. 기분 좋은 시작에 비해 어쩐지 여러 가지로 울적해졌지만, 나에겐 나의 행복이 있는 것이기에. 


나는 오늘도 볕이 좋아 근심 없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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