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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Apr 23. 2023

욕망하는 이방인들의 도시, 뉴욕. [1/2]

뉴요커라면 모름지기 욕망해야 한다.

뉴욕에 갓 도착한 패기 넘치던 20대 초반의 나는, 틈만 나면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에 타임스퀘어를 찾았다. 관광객들이 빠져나간 야심한 밤의 타임스퀘어는 특별하다. 언제나 심하게 붐비는 거리인데 흔치 않게 탁 트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타임스퀘어를 가득 채우는 상징적이고 화려한 전광판들은 밤새도록 꺼지지 않고 거리를 빼곡히 메우고 있어서, 그 자극적인 불빛들이 생기 있게 요동치는 한산한 거리 한복판에 우뚝 서 있노라면 뉴욕이 온전히 나의 소유인 것 같았다. 금장식이 있는 붉은 망토를 걸치고 왕의 자리에 올라 용맹하게 "이 세계는 이제 나의 것이다!"라고 외치는, 조금은 귀여운 소년 만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나의 멋진 대사와 함께 극적인 바람이 휘몰아친다. 휘날리는 망토와 나의 빛바랜 노란 머리칼, 하늘을 향해 쳐든 빛나는 주먹. 여기서 잊어서는 안 될 현실의 디테일이라면 바람과 함께 철없이 날아가고 굴러가는 길바닥의 수많은 쓰레기들일 것이다. 이 디스토피아적인 그림마저 어찌나 매력적이고 설레던지. 


뉴욕은 미국 내에서는 물론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꿈과 야망으로 가득 찬, 자유를 사랑하는 이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는 곳이며, 그것이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동력이다. 모두 제각각이다. 훌륭한 예술가나 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 학업에 전념하여 전공지식을 쌓고 싶은 사람, 새로 시작하는 사업을 성공시키고 싶은 사람, 기업에서 사다리를 타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은 사람, 방법이야 어떻든 더 많은 돈을 벌 기회를 얻고 싶은 사람 등등. 그 사연 많은 열정의 에너지는 뉴욕의 공기에 밀도 있게 담겨 있고, 아직도 나는 북적거리는 맨해튼 거리를 거닐면 마음이 두근거린다. 숨이 살짝 가빠지기 시작하는 기분 좋은 흥분감이다. 언제든 먼 기억 속 새벽의 타임스퀘어로 나를 돌려보내어 앞뒤 없이 가슴 뛰게 만드는 첫사랑 같은 힘, 그것이 이 지저분하고 불편한 도시에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부여한다. 또 그렇기에 뉴욕에 살고 있거나 살아본 이들은 뉴욕을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꽤나 자주 욕을 퍼부으면서도 말이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에너지가 도시를 숨 쉬게 하기에, 사람이 정체되어 버리면 뉴욕의 심장은 힘을 잃고 멈춰버린다. 뉴욕을 화려하고 낭만적인 그 모습 그대로 살아있게 한다는 것은, 공교롭게도, 그 안의 개개인들이 쉴 틈 없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사투를 벌여야 한다는 뜻이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판데믹 기간 동안 뉴욕은 충분히 힘을 내지 못해 죽어버렸고, 그 모습엔 마치 현란하고 쾌락적인 파티로 밤을 지새운 다음 날 텅 빈 지저분한 방에 홀로 남은 허무함 같은 도시의 황폐한 슬픔이 짙게 배어있었다. 


뉴요커라면 모름지기 욕망해야 한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하며 자신의 꿈을 이룰 때까지 전력으로 전투에 임해야 한다. 남을 돕는 것도, 서슴없이 짓밟아버리는 것도 모두 필요한 자질이다. 그러다 피투성이가 되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상황을 재정비하는 때가 오면, 팔이나 다리 하나쯤, 심지어 목숨을 잃을지라도 남아서 계속 전진할 것인지 아니면 계급장을 챙겨 전장을 떠나 보다 안전한 삶을 추구하며 지낼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결단의 기회는 몇 번이고 온다, 매 번 조금씩 다른 패의 카드를 가지고.  


이방인이 뉴욕에서 10년 이상 매일같이 욕망을 위한 사투를 벌이는 삶을 지속하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 않나. 들끓는 욕망으로 만성이 되어버린 두통이 무의미해지는 날은 온다. 내가 19년이라는 긴 시간 뉴욕을 떠나지 않고 맴돌며 지내왔다는 것은, 주변에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전장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말이지 유입이 많은 만큼 이탈도 많은, 철새들의 도시다. 나의 그 시절 소년 만화에 등장하던 인물들은 거의 모두 뉴욕을 떠났다. 떠나는 이들은 미련이 없었다. 훌륭히 후회 없게 싸웠기 때문이다. 다른 삶을 찾아 떠나는 그 가벼운 발걸음에 내가 먹구름이 될 이유는 없었다. 나는 쉽게 남겨졌고 괜찮아야 했다. 슬픈 눈으로 미소 짓는, 거리의 흔한 이름 모를 소녀상처럼 그들을 보냈다. 


나는 늘 마음이 맞는 오랜 동료들과 언제든 편안하게 예술과 삶을 이야기하는 일상의 휴식을 꿈꿨다. 뉴욕 같은 도시에서라면 그렇게 늙어간다는 것은 더욱더 훌륭하지 않은가. 원하지 않는 이별을 반복하며 나의 쉼과 행복을 빼앗기는 것이 여간해서는 덤덤해지지가 않았다. 늘 오랜만에 들이키는 독한 술의 첫 한 모금 같았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부터 만나는 모든 이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마음의 온도가 체온보다 살짝 낮다면, 떠나도 많이 슬프지 않으니까. 나는 그렇게 이방인들이 모인 도시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내 방식대로 익숙해졌다. 





- 다음 편에 마무리 하였습니다: 욕망하는 이방인들의 도시, 뉴욕. [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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