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날인 얼마 전 정원이 예쁘게 가꾸어진 카페에 갔었다. 야외 테이블 자리에 앉아서 나른하게 차를 마시고 있는데 검은색 나비가 정원 위를 팔랑팔랑 날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네 장의 날개 중 윗 날개 한쌍은 둥글고 커다란 모양이었고 아래쪽 한쌍의 날개는 밑으로 갈수록 좁고 길어지며 너울거리는 굴곡이 있었다. 마치 드레스 끝단의 레이스가 굽이치는 것처럼 보였다. 날갯짓을 할 때마다 치맛자락이 나풀거리는 듯, 선과 형이 완벽한데 색깔마저 검은색이라 얼마나 우아해 보였는지 모른다. 한참을 딸과 함께 바라보다가 정말 오랜만에 보는 나비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참, 날씨가 좋은가 보다라는 생각도.
어린 시절 미술시간에 봄날의 풍경화를 그릴 때면 늘 빠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높은 하늘의 태양, 초록 새싹들, 화려한 색상의 꽃들, 그리고 그 풍경 속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나비. 온 세상이 순환을 멈춘 듯한 춥고 메말랐던 겨울을 지나 생명이 태동하는 봄을 상상하면 따뜻하고 밝은 그 중심에는 늘 가볍고 경쾌한 나비의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나비의 빛깔과 무늬는 눈을 사로잡고 팔랑팔랑 날갯짓은 우리를 유혹한다. 나들이를 나선 길에 나비를 만나면 그 우아함에 이끌린 나의 발걸음은 나비의 뒤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유유히 꽃 사이를 가로지르다가 꽃 위에 앉은 나비를 볼 때면 꽃의 화려함에도 묻히지 않는 그 자태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따뜻한 공기가 주위를 가득 채운 봄날, 그 배경 속 나비의 움직임을 쫒다 보면 나비가 되어 즐겁게 노닐었다는 호접몽의 주인공이 내가 된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든 지금은 가만히 나비를 떠올려보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체가 없는 환상 속의 이미지일까라는 생각도 한다. 어린 시절 팔랑팔랑 나비의 흐름을 따라 꽃밭을 뛰어다니다가 내가 쫒는 것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서 잡으려 해 보면 이미 날아간 나비가 남긴 공기의 파동만이 느껴졌다. 나는 손 끝에 닿을 듯 닿지 않는 나비의 흔적만을 더듬을 뿐이다. 한참을 가까워진 듯 가까워지지 않는 나비의 뒤를 따르다 그 매정함에 주저앉아 한숨을 돌리고 나면 어느새 나비는 사라지고 없었다. 과연 내가 나비를 따라다닌 것이 맞긴 한 걸까라는 의심마저 하게 되었다. 차라리 내가 도달할 수 없는 높이를 나는 새라면 나와의 거리를 좁히려 하지도 닿아보려는 노력을 하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비가 날아다니는 꽃밭이란 봄날의 환상과도 같은 풍경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어느 전시회에선가 박제된 다양한 형태와 색상의 나비를 관찰하고는 나비는 실재하는 것이 아닌 박물관에 존재하는 사물이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비의 존재에 대해 생각했던 것 중에 또 하나는 흐린 날에 나비는 어디로 가는 걸까?라는 의문이 생겼을 때였다. 나비가 등장하는 곳은 늘 밝고 맑고 투명한 곳이다. 나는 구름이 끼고 비가 올 것 같은 어두운 날에 나비를 본 기억이 없다. 분명 나비도 흐린 날에 어딘가에 있을 텐데 왜 나는 그곳을 알 수가 없을까. 나비는 오로지 밝음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흐린 날의 우울함은 나비에게 실재하지 않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런 것은 감추고 있는 것일지도. 비를 피해 돌틈이나 식물들 사이에 몸을 피하는 나비의 고군분투를 이제는 알지만 예전의 나는 오로지 밝음을 은유하는 나비에 대해 구체적인 감정의 형태가 생겨나지 않았다.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에겐 나비의 우아함보다는 불을 향해 달려드는 나방의 열정에 더 공감했다.
요즘은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자연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일도 많지 않았을뿐더러 야외에서의 휴식보다는 도시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진 일상에 나비를 만나기는 힘들었다. 그러다 며칠 전 간 그 카페에서 나비를 보며 즐거워하는 딸의 모습을 보자 그 아름다운 정경에 시선을 빼앗겼다. 아이의 밝은 모습과 맑은 풍경 속 나비의 명료함은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문득 그동안의 나의 심상한 생각들은 그저 찢어진 종이 쪼가리처럼 별게 아닌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보면 될 텐데 왜 자꾸 의미를 찾고 나의 감정에 무언가를 끼어 맞추려 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이 말했다. "나비는 예뻐. 이상한 것도 있고 예쁜 것도 있고 색깔도 여러 가지라 좋아. 나는 노랑나비가 가장 좋은데 검정 나비도 예쁘네." 있는 그대로를 보는 아이의 웃음을 보니 나도 따라 웃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