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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무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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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범인 Jul 18. 2021

과거의 재구성, 과거 여행하는 법

미래의 나는 어떤 사람일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카페라테의 각성효과로 정신을 깨우고 산책을 하며 하루를 열 것이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읽고 뜨개를 하고 친구를 만나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이겠지만 평범하고 조용하게 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가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이다.

그 때 내가 여행하고 싶은 곳은 어딜까? 나는 아마도 내 인생의 한 부분을 다시 살아보고 싶을 것이다. 물리적인 거리가 중요한가.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는 '내 방 여행하는 법'에서 42일간의 가택연금형을 받아 자신의 방안을 여행하기도 했지 않은가. 나는 내 인생을 여행할 것이다. 나의 기억과 상념에 상상력을 더해 과거를 재구성해 볼 것이다.


자, 나의 인생을 여행해 보자.

고등학생 시절 나는 왜 그렇게 공부를 안 했던가. 조금만 더 공부를 했더라면 난 아마 타인에게 멘토가 되어 줄 수도 있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엄마가 난 분명 조금만 더 노력하면 뭐라도 될 사람이라고 했었는데...

그런데 고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진행된 문화체험 기회가 있어 일본 여행을 갔었구나.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고 익숙하지 않은 길을 걸으며 여행이란 끊임없는 도전이라는 흥분되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꼈지. 그리고 일본의 거리를 걷고 사람들을 만나며 역사교육으로 인해 고정관념으로 박혀있던 일본에 대한 편협한 나의 시선이 옳지 않다는 것을 느꼈지. 이 경험을 통해 나의 첫 직장은 '여행사'가 되었다. 그리고 자유로운 여행들. 나의 인생에서 지구 곳곳을 여행하는 20대를 열어준, 그 도전정신을 갖게 만들어 준 고등학생 시절의 여행은 참 칭찬해. 공부 좀 안 했으면 어때. 충분히 잘 살았다.


첫 직장으로 가보자.

왜 그렇게 몸 바쳐 일했니. 아침에 눈 뜨면 바로 출근해서 하루 종일 일하고 자정이 다 되어 집에 돌아오는 일상. 365일 매일 그렇게 일한 것은 아니었으나 성수기만 되면 그렇게 일하는 것이 당연했었지. 지하철에서 쓰러진 적이 있어도 박봉의 월급에 그렇게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때는 괜찮았지. 스트레스로 몸 버리는 것도 모르고.

그런데 그때의 동료들을 잊지 못하고 지금도 연락하고 있구나. 힘든 일을 함께 겪어온 사람들과의 끈끈한 우정은 어떤 시련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일이 곧 나의 인생이었던 20대의 치열함은 그 이후의 내 삶의 목표와 자세를 확고하게 자리 잡게 해 주었다. 지금 나는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젊은 시절의 고군분투, 치열함, 칭찬해. 그때도 잘 살았구나!


남편과의 결혼하던 지점으로 가보자.

와.... 9년 연애라니, 너무한 거 아니야? 다른 남자도 좀 만나보고 각각의 상대와 많은 경험을 했어야지! 인생에서 기억해 볼 남자 하나 없다니 우울하다.

그런데 몇십 년을 나와 함께 산 이 남자, 나를 속속들이 다 아는구나. 아침에 카페라테 마시는 내 앞에 앉아서 조용히 책을 읽고, 저녁에 맥주 마시며 하루를 함께 마감하는 이 사람, 참 편하다. 다른 사람 만나봐도 결국 나한테는 이 사람일 거야. 한 사람에게 충실했던 나, 잘했어.


여행을 거듭할수록 나는 행복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구나. 후회도 회한도 없다. 늘 열심히 살고 미래를 계획하며 살았다. 자, 내일은 내 인생에서 결혼 후의 지점으로 여행을 가보자. 아니, 유년시절로 가볼까? 오늘은 너무 많은 곳을 여행해서 지쳤다. 휴식이 필요하다.


흔히 과거를 바꿀 수 없고,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의 내가 끊임없이 재구성하고 각색하여 만들어진 과거의 이미지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미래의 나는 과거를 여행하며 삶을 가꾸어 나갈 것이다. 물리적인 이동을 통한 여행보다 내 인생의 여러 지점에 현재의 나를 투영하는 사유의 여행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자, 미래의 내가 과거를 돌아보았을 때 긴 여운을 느낄 인생이려면 현재의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미래의 나와 과거의 나의 연결고리는 현재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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