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와 나는 가끔 우리의 신혼여행을 추억하곤 한다. 비행기 티켓 단 하나만을 들고 떠난 모로코, 첫날의 제마 알프나 광장에서의 막막함을.
나에게 여행이란 익숙하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떠나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었다. 아무 계획 없이 떠나 현지에서 부딪히는 여러 상황들을 경험하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라 생각했다. 당혹스러운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그 순간의 짜릿함과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의 통쾌함이 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했다. 굳이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여행의 즐거움 중 반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나와는 반대로 평소 모든 일을 계획하고 차질 없이 실행에 옮기는 B는 여행도 완벽한 준비와 계획을 세워 떠나는 사람이었다. 일분일초의 허비도 없는 효율적인 여행을 선호하고, 갑자기 닥친 위기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플랜 a, b, c를 준비해 두는 사람이다.
그런 B가 내게 신혼여행 준비를 일임했다. 내가 여행 경험이 많다는 것이 이유였는데 나의 이런 여행 취향을 간과한 B의 실수였다. B의 성향을 알고 있는 나는 신혼여행 준비를 한치의 오차 없이 준비하겠노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결혼식 준비와 회사일로 눈코 뜰 새 없이 지내며 서서히 지쳐갔고 ‘어떻게든 되겠지'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준비를 미루고 있었다.
"신혼여행 준비는 조금 미루자. 지금은 너무 바빠."
"결혼식 준비하는 것도 너무 여유가 없어. 신혼여행은 어떻게든 될 거야."
"비행기 티켓은 준비했으니 걱정 마. 우리 떠나는 것은 문제없어."
"앗 어떡하지? 숙소를 하나도 예약 못했네. 현지에 가면 워킹 고객을 위해 남겨둔 룸이 있을 거야. 걱정 마. 나 많이 겪어봤어."
"사하라 사막투어도 현지 여행사 가면 다 예약돼. 걱정 마."
"여행이란 자고로 알 수 없는 세계로 떠나 고생하며 무언가를 얻어오는 거야. 다 준비해 가면 무슨 재미가 있어?"
불안해하는 B에게 처음에는 천천히 준비하겠다고 달래다가, 나중에는 불안감을 버리라고 안심시키고, 결국에는 나만 따라오라며 큰소리를 쳤다. 좋은 말로 하면 긍정적이고 나쁜 말로는 대책 없는 나는 이전의 여행에서 늘 그랬듯 비행기 티켓만 들고 B를 잡아끌어 신혼여행을 떠났다. 북아프리카의 붉은 보석 모로코로.
지방에서 결혼식을 했던 우리는 모로코의 마라케시까지 이동에 대략 24시간 정도, 즉 꼬박 하루가 걸렸다. 결혼식장 - 인천공항 - 모로코 카사블랑카 공항 - 마라케시 열차역. 결혼식 후 바로 이동한 터라 우리는 너무 지쳤고 샤워와 포근한 잠자리가 너무나도 간절했다. 저녁이 되어 어둑어둑해진 마라케시 역에서 B는 나에게 행선지를 물었다.
"일단 제마 알프나 광장으로 가자. 숙소를 잡고 광장에서 밤을 즐기자!"
관광객들과 현지인들로 뒤섞인 제마 알프나 광장은 소란스럽고 화려했다. 수많은 노점상들의 주황 백열전등이 밝히는 광장의 밤은 낮의 태양보다도 더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지친 몸이었음에도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이 밤을 즐겨야 한다는 생각에 온 몸의 세포가 반응했다. 그러나 우리의 등에는 각각 35리터, 45리터의 배낭이 매달려있었고 우리에겐 아직 쉴 수 있는 숙소가 없었다. 숙소부터 찾아야 한다. 일단 5성급 리조트를 찾아서 투숙 가능한 지를 물었다. 생각지도 못한 답변.
"오늘 밤은 룸이 없다. 이 주변은 아마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갑자기 불안감이 밀려왔다. 오늘 밤 숙소를 잡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그제야 내가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련을 맞이해도 쿨하게 넘길 수 있는 대책 없는 여행을 하기에 우리의 여행 일정은 너무 짧은 5박 7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날은 우리의 첫날밤이었다. 평생 한번뿐인.
호텔을 찾아 제마 알프나 광장을 끼고 주변을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광장에 도착하기 전에는 구시가지인 메디나 안에 리아드 호텔(전통 숙소)이 많을 테니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그 밤에 리아드 호텔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메디나 안은 거대하고 어두운 미로였다. 그 어둠 속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광장을 헤매던 우리에게는 자연스럽게 삐끼들이 다가오기 시작했고 그들에게서 벗어나는 것도 지쳐갔다. 원망하는 듯한 B의 시선에 그때까지 큰소리치던 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울고 싶었다.
결국 한 시간쯤 숙소를 찾아 돌아다니던 끝에 B는 택시를 타고 오던 길에 보았던 호텔로 가자고 했고 나는 못 이긴 척 B의 의견에 따랐다. 그리고 피곤한 나머지 호텔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엄청 비싼 현지식을 겨우 몇 점 먹었다. 룸으로 돌아가서는 씻지도 않고 잠시 침대에 누웠는데 그 상태 그대로 눈을 감았다 뜨니 다음날 아침이었다. 이렇게 우리의 신혼 첫날밤은 눈 감았다 뜨니 끝이었다. 제마 알프나 광장의 야시장에서 밤을 즐기지도 못하고 저녁식사를 근사하게 하지도 못하고 잠들기 전 와인잔을 기울이는 달콤함도 없이.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며 술잔을 기울이고 이야기하고 웃는다. 그때를 생각하면 난 B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 즐겁고 달콤할 거란 첫날밤의 로망을 실현시키지 못한 것은 명백한 나의 실수였다고 B에게 사과한다. 그러나 나는 신혼여행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첫날 마라케시의 제마 알프나 광장에서 큰 배낭을 메고 헤매던 우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라케시 메디나 안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느낀 즐거움도, 사하라 사막에서 낙타를 타며 느낀 유쾌함도, 사막에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느낀 아름다움도, 페즈의 골목골목을 걸으며 느낀 부산스러움과 가죽 염색 공장의 이국적인 모습에 취한 우리의 모습은 그다음이다. 첫날의 막막함과 무거운 어깨와 다리의 감각이 신혼여행을 기억하는 첫 번째 느낌이다. 첫날의 그 강렬한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면 나의 실수도 꽤 괜찮지 않은지 B에게 묻는다. B는 아마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면 우리의 짧은 신혼여행은 더 완벽했을 거라고 대꾸한다. 나는 맞받아친다. 우리가 만나고 결혼한 것이 실수가 아니면 되는 거잖아? B는 할 말이 더 있는 것 같은데 입을 다문다.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의 이 같은 대화의 흐름은 한 번도 경로를 이탈한 적이 없다. 나는 여기에 한마디 더 보태고 싶다. 이런 기억들 계속 꺼내볼 수 있다면 행복한 것 아니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