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 결국 차에 실려서 이동했어."
"발바닥 전체가 물집 잡혔다면서?"
"어제부터 울면서 걷는 것 보기 힘들었는데 차 타고 갔다니 오히려 다행이야."
뜨거운 태양,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 무거운 배낭과 그보다 무거운 나의 다리. 대학생이었던 나도 힘들었던 그 길을 초등학생 아이도 함께 걸었다. 간혹 이렇게 낙오되는 아이들도 있다. 함께 걷는 지도교사 입장으로는 차를 타고 안전하게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아이는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억울하고 속상해서 운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마음이 아팠다.
대학생 시절 나는 한 체육단체에서 진행하던 청소년 국토대장정 프로그램의 지도교사로 참여했다. 10일 동안 문경에서 시작해서 서울까지 약 220km 정도의 거리를 걷는 일정이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으로 구성된 아이들은 여름의 한복판을 오로지 앞만 보고 걸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밝은 기운을 북돋아주고 더위에 지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들과 걸음을 맞추고 말을 걸었다. 말을 나눌수록 작고 어린 아이들이라고 걱정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아이들의 언어로 전달되는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분위기는 가볍고 유쾌해진다. 그러나 이야기의 깊이를 헤어려보면 그들의 도전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목표를 향해 완주하려는 의지가 있었고 그 여정을 즐기려는 마음가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도 체력이 고갈되는 것을 느꼈지만 아이들의 순수한 열정과 책임감은 나의 몸과 마음이 해이해지는 것을 다잡게 만들었다. 더위와 습도에 몸은 지쳤을지라도 아이들의 열정은 식지 않았고 오로지 걷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들의 어디에서 샘솟는지 모를 끝없는 에너지와 생기가 놀라웠다. 당연히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여정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함께 서울로 귀환해서 마주한 아이들의 얼굴은 천진난만함 그 자체였다. 10일 동안 흘린 땀과 눈물의 가치를 웃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발견한 것 같았다.
나는 여름을 생각하면 아지랑이가 올라오던 아스팔트 길을 땀을 흘리며 줄을 지어 걸었던 우리의 모습과 아이들의 표정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은 바다나 계곡, 시원한 음료나 먹거리처럼 대부분 여름을 피하기 위한 것들이기 마련인데 말이다. 그것은 아마도 여름을 온전하게 온 몸으로 느끼며 지나온 순간이고 아이들과 함께 지나온 여름의 그 여정이 내게 남긴 감동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햇볕의 뜨거움인지 걷고 있는 우리의 열정의 뜨거움인지 가늠할 수 없었던 역동적이고도 굳건한 의지가 느껴지는 여정이었다.
여름의 열기와 습기는 내 안에 갇혀있던 나를 밖으로 꺼내고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의지를 불타오르게 한다. 내게 여름은 국토대장정에 도전한 아이들의 모습처럼 도전과 열정을 상징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내가 내쉬는 숨보다 뜨거운 공기와 온몸이 축축하도록 흘린 땀의 습기를 느끼며 무언가에 몰두하는 순간, 나는 내 안에 품고 있는 근원적 에너지를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는 여름이 되면 가장 활동적인 사람이 된다. 걷는 것이 좋고 뛰는 것도 좋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다. 무엇을 시작하기에 여름은 가장 좋은 계절이라고 생각한다. 뜨거운 태양은 나의 열정이 식지 않을 굳건함을, 주변의 습기는 나의 의지가 메마르지 않도록 인내심을 가르쳐 준다.
피곤할 때면 내 몸이 장마철 빨랫줄에 널린 젖은 옷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자전거를 타러 나간다. 페달을 밟는다. 태양은 눈앞의 모든 것을 태울 듯이 내리쬐고 뜨거운 바닥은 열기를 내뿜고 있다. 아스팔트가 깔린 자전거길을 멀리 내다보니 곧게 뻗어있어야 할 길이 춤을 추듯 흔들린다. 나는 뜨거운 숨을 내쉬며 그 길을 가르고 있다. 내 몸의 에너지가 주변 공기보다 더 뜨겁다는 게 느껴지는 순간 나는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몸이 이렇게 뜨거운데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이렇게 여름은 내게 무언가에 도전해야 할 이유를 내 몸을 통해 이야기해준다. 그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던 나는 더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