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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범인 Jul 18. 2021

나를 완성해 가는 '일'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부모님이 장사를 하는 가게 뒤에 붙은, 한 평도 안 되는 주방과 작은 방 두 개가 딸린 상가주택이었다. 주된 출입구는 가게 정문이었는데 1년 365일 그 정문이 닫혀 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눈을 뜨면 우리 부모님은 일을 하고 계셨고 그 당시에는 그게 당연했다. 일은 우리 일상의 배경이자 전부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우리  앞으로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다. 놀러  친구의 집은 재미있고도 신기한 곳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층으로 올라가는 것은 하늘과 가까운 곳으로 올라가는 기분이라 붕붕 들떴다. 똑같이 생긴 대문들이 쪼르르 붙어 있는 광경에는 마치 우리가  책가방을 보는 듯한 안락함을 느꼈다. 모두 똑같은 외형,  가족만의 안온한 일상이 펼쳐질 거라 예상되는 대문 안의 정경.  그 정겨운 모습에 마음이 편안했다. 처음 친구 집에 들어서자 집은 그저 먹고 자고 노는, '일과 분리된 공간'이라는 사실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가끔 친구 아빠가 휴가라 집에 계신 날에는 ‘아빠가 저렇게 놀고 있을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에 어린 나이에 문화적 충격도 받았다. 친구의 ,  공간이 주는 아늑함에    부러움이 치밀었다.


그때부터일 것이다. 나는 일과 일상이 분리된 삶을 동경했다. 꼭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대학교를 졸업하며 '회사원'이 된 나는 일과 일상을 열심히 분리했다. 내 집을 꾸미고, 취미를 갖고, 남는 시간은 여행으로 채웠다. 나는 꿈꾸던 일상을 영위하는 평범한 회사원이 된 것이다. 그때는 내 삶이 성공한 것인 줄 알았다.


이런 나의 삶에 균열이 생긴 것은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였다. 일을 그만두자 나의 일상도 무너졌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지만 그것과 동시에 일을 하던 시간을 채울 '무언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일을 하기 때문에 달콤했던 휴식 시간도, 나만의 공간도 부질없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의 우리 집이 떠올랐다. 늘 분주하고 먹고 살 걱정이 혼재했어도 활기가 넘치던 곳이었다. 귀금속 세공기술을 갖고 있던 아빠가 운영하던 귀금속 가게는 우리 부모님이 이룬 꿈이었다. 비로소 부모님의 일이 갖고 있는 의미가 보였다. 부모님께 일은 이루어낸 꿈이었고 일상과 분리할 수 없는 삶 자체였다. 어릴 때는 보지 못한 부모님의 미소가 떠오르고 행복이 느껴졌다.


그때의 부모님과 비슷한 나이가 되고 초등학생 아이 둘의 엄마가 된 나는 이제 부모님의 삶을 동경한다. 일이 삶의 일부가 되어 스스로 일구어 나가는 것이야말로 나의 존재 의미를 매일매일 발견해 가는 것이 아닐까. 내가 하는 일은 지금 이 시간의 나를 완성해가는 가치 있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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