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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범인 Nov 21. 2022

음악을 함께 듣는다는 것

운전에 서툴던 얼마 전까지는 주의가 산만해질 것 같아서 운전 중에는 음악을 잘 듣지 않았었다. 그러나 요즘은 내비게이션 보는 것도 익숙해지고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것에도 의연해지면서 운전을 하며 음악을 듣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이것은 작동하는 감각신경 중 청각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차 안에 배경음악을 삽입하여 운전에 부드러움이나 경쾌함을 살리는 의미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을 키우며 동요를 제외한 음악과는 멀어졌던 나는 요즘 차 안에서 듣는 음악으로 감성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다. 자동차라는 좁고 밀폐된 공간에 음악이 가득 차면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이동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운전이 편안해지고 이동하는 자유로움을 맘껏 누린다. 나는 특별히 한 가지 음악 취향을 고집하지 않지만 대부분 조용한 발라드나 r&b를 듣곤 한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차를 타게 되면 나에게 음악을 선택할 권리는 사라진다. 아이들 둘이서 음악 선택권을 두고 서로 티격태격 말다툼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끼리 돌아가며 음악을 플레이하라고 이야기한다. 아이들 각자가 선택한 음악은 결이 조금은 다를지 몰라도 대부분의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음악이나 힙합 음악인 경우가 많다. 아이 둘은 하나가 되어 노래 부르고 춤을 춘다. 나 역시 유행하는 음악들은 같이 즐기고 싶어서 반긴다. 함께 들썩들썩 리듬을 타기도 한다.


요즘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악은 '내 것은 무조건 다 새것'이라고 허세 부리는 장난스러운 곡이고 딸이 빠져있는 노래는 '지금은 좋아한 후이고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는 깜찍한 곡이다. 아이들이 노래에 맞춰 건들거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춤을 추는 모습이 귀엽고 예뻐서 함께 신나게 음악을 들었다. 비트나 멜로디에 취해서 나 역시 음악을 즐겼다. 그러나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매일 그 노래를 듣다 보니 자꾸 노래를 분석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음악을 듣는 시간이 많아지며 멜로디에 익숙해지고 차츰 가사가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앗, 이것은 그동안 자주 듣던 동요만큼이나 직설적이네?' '하고자 하는 말의 의도가 너무나 정확하게 전달되어서 내가 보탤 것이 없구나!'와 같은 어른(말하자면 꼰대)의 마인드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다. 그리고 자꾸만 '진짜는 핵심을 찌르는 은유를 사용하는 법이지~ 이런 애송이들!‘이라는 말이 맴돌기도 했다. 그리고는 이런 내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나를 돌이켜 보곤 한다. 사실 나도 어릴 때는 아이돌에게 빠져서 부모님과 음악 취향에 대한 논쟁을 벌이곤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HOT, 젝스키스 노래를 들으며 너무 시끄럽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부모님과 갑론을박을 벌이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었다. 그때는 나의 부모님이 참 꽉 막히고 지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아이들과 서로의 음악 취향에 대해 반대의 의견을 주고받고 있으니 나 자신이 따분한 어른이 된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 때문에 나는 최신의 대중가요도 많이 듣고 즐기지만 요즘 나도 모르게 옛날 노래들을 흥얼거리곤 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우리 부모님이 즐겨듣던 노래도 아닌데 말이다. 옛날 노래들은 얼마나 간절하고 사연이 많은지 모른다. 심수봉의 '미워요'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백만 송이 장미'가 가끔 내 입에서 툭툭 튀어나오는데 부르다 보면 멜로디는 애절하고 가사가 애달파서 나의 마음을 불에 덴 듯 뜨겁고 아프게 만들곤 한다.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 같은 경우는 너무도 비장해서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수 없다며 나의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든다. 물론 나는 어린 시절에 그 음악들이 올드한 감성이라 느껴져서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저 지루한 음악 같았는데 나이가 들어가며 그 노래를 떠올릴 때면 애절한 그 가사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단지 부모님이 젊은 시절 유행하던 음악을 듣는다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부모님의 감성을 알 것 같다는 사실은 너무도 놀답다. 어린 시절에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는데 말이다. 부모님 세대가 젊었던 시절의 배경이 되던 곡들이라서 그 감성에 젖게 되는 것일까. 부모님이 젊은 시절 느끼던 감정을 나도 똑같이 느끼며 나이가 들어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서로의 음악 취향을 이해하지 못해 다투던 일들을 생각하면 너무도 재미있는 변화이다. 이렇게 음악은 나와 아이들 세대, 나의 부모님 세대를 이어준다. 음악은 대화나 스킨십보다도 감정을 더 자극하는 표현들의 은유다. 함께 듣고 이해하는 음악의 공유는 서로를 연결하고 결속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여러 음악을 듣고 부르지만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장르는 r&b나 발라드이다. 빠른 비트의 음악을 즐기던 예전과 달리 지금 내가 느린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바쁘게 살아가는 현실에서 느리게 살고 싶은 나의 마음을 반영한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나도 아이들과 함께 ‘내 것은 모든 것이 새것’이라고 외치는 '쌔삥'을 듣고 부르며 음악에 맞춰 손목도 한 번씩 쓸어주고 재킷 앞섶도 두어 번 들쳐준다. 같이 즐기고 있으니 아이들과 더 가까워진 기분이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함께 불러주지 않는다. 뭐, 실망하지 않는다. 내가 그랬듯이 언젠가는 아이들도 나의 감성을 알고 이해해줄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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