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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범인 Nov 08. 2022

기억과 기록

얼마 전 오랜 친구들과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갑자기 사정이 생긴 한 명을 제외하고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친구들이 어렵게 시간을 맞춰 여행을 간 참이었다. 여행지에서의 추억도 만들고 지금 우리의 우정을 박제하듯이 기록하기로 했다. 우리가 간 사진관은 헌책방을 배경으로 하는 곳이었는데 수많은 기억과 기록들이 벽면의 책장 안에 가득 쌓여있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들이 함께한 시간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낡고 빛바랜 것들이 쌓여있는 풍경은 과거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과도 같다. 아늑하고 편안하다. 책이 가득 쌓인 책장을 배경으로 우리는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오래된 책이 머금은 나무와 흙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과거로 이끈다. 우린 다시 교실에서 장난치고 수다를 떨던 중학생이 되어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사진관을 나오는 우리의 손에는 각자가 선택해서 인화한 사진이 들려있었다. 우리는 짓궂은 표정을 하거나 서로를 바라보며 함박웃음이 터진 모습을 보며 변치 않은 우리의 우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의 모습과 행동들은 예전 그대로라고 이야기를 하며 한참을 보낸다. 그러나 사실 이 사진들은 40대가 된 여자 친구들의 현재를 남긴 사진이다. 우리의 인생 중 완연하게 우아하고 안정된 시절의 아름다움을 찍은 것이다. 그리고 이 시절을 우리가 함께하고 있음을 기록한 것이다. 우리는 이 사진 속에 우리의 마음을 담았다. 그래서 사진에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이것이 좋아서 사진을 집 안 서랍장에서 꺼내보며 이때를 자주 추억할 것 같았다.


종이 사진을 보니 예전에는 꼭 사진을 인화해 사진첩에 보관하거나 소중한 사람의 사진을 지갑 속에 넣어서 갖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던 예전에는 한 번 두 번 셔터를 누를 때마다 그 순간의 기록에 진지했고 인화된 사진을 보며 그 안에 담긴 기억과 메시지들을 되새겨보기도 했었다. 이번 여행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은 그때처럼 오랜만에 보는 실체가 있는 기록물이었다. 핸드폰이나 컴퓨터가 아닌 종이 위에 남긴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진정으로 현재를 남긴 우리의 기록 같았다.

핸드폰 카메라로 언제 어디서든, 아무리 사소한 것들이라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 일상이 된 요즘은 사진에 대한 애틋함이 예전과 같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은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마구 찍을 수 있고 찍힌 사진은 보정과 수정을 거쳐 순간과 기억을 재구성하는 것이 누구나 자유롭기 때문일까. 그래서인지 사진을 찍는 것도 사진을 보관하는 것도 대단치 않은 일이 된 것만 같다. 나도 다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의미를 갖은 순간을 머릿속의 각인하기보다 최대한 많은 사진을 찍어서 보관하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내 삶의 장면을 디지털 파일로 보관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인데 그 마저도 의미를 갖은 순간의 기록은 언제 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의 핸드폰에는 기억에서 잊힌 수만 장의 사진이 카메라 사진첩에 담겨있다. 늘 그렇듯 나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현재를 차곡차곡 기록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사진은 장면만 있을 뿐 서사가 없을 때가 많다.


이번에 친구들과 찍은 사진은 우리의 옷차림, 표정, 머리 모양 외에도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그것을 헤어리다보면 사진을 바라보는 1초, 2초의 흘러가는 시간마저도 그 사진 속의 순간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이 순간도 소중하게 여겨졌다.

살아온 날들이 많아질수록 나의 삶 속 행복하거나 힘들었던 시절도 내 주변의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한 장면들도 자꾸 흐려지고 잊힌다. 내게 소중하고 잊을 수 없는 순간이라고 여긴 모든 장면들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의 마음과 다르게 의미가 변화하고 재구성된다. 그래서 요즘은 내 삶을 기록하는 것이 대해 자주 생각한다. 무조건적인 기록이 아닌 의미가 있고 마음을 담은 기록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주의를 기울여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오늘,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보며 함께한 행복했던 여행을 떠올리듯이 나의 기록 속에서 그날의 나를 기억하길 바란다.

사진 속에 담긴 나의 서사를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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