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생각하면, 어묵김치찌개

by 김범인


늘 바빴던 엄마는 요리를 많이 해주시진 않았다. 어린 시절에는 배달음식을 주로 시켜먹었는데 그 시절의 엄마가 해주신 음식을 떠올려보면 그 가짓수가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예쁘고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아니라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를 숭덩숭덩 대충 썰어 넣어 볶아내고, 끓여낸 볼품없는 모양새의 음식들이었다. 친구 집에서 밥을 먹고 오는 날은 예쁜 접시에 정갈하게 올라 있는 반찬들과 요리들을 보며 우리 집 밥상을 떠올렸고, 난 우리 집에서 친구와 함께 절대 밥을 먹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 생각을 할 지경이었으니 나는 엄마의 요리를 기억하지 않을 듯했고, 내가 그 맛을 그리워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고, 그것을 만들어 먹을 거라고는 절대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의 경험과 기억이라는 것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인데 특히 맛의 기억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다. 이만큼 나이를 먹고, 이 나이만큼 입과 뇌를 황홀하게 하던 음식들을 많이 경험해보고 느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할 것 없었던 어린 시절의 음식이야말로 평범한 어느 날 갑자기 기억나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연쇄작용으로 그 맛이 자연스럽게 입 안에 느껴지고 그 시절의 나와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어묵을 넣은 김치찌개이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이 음식이 생각난 것은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느라 외식은 꿈도 꾸지 못하던 몇 년 전, 매일매일 오늘은 무얼 해 먹을까 고민하면서였다. 김치찌개 하면 돼지고기를 넣고 푹 끓인 새콤 짭짤한 찌개국물을 머금은 약간은 퍽퍽한 고기의 식감을 어금니로 느끼는 돼지김치찌개나, 후다닥 끓였지만 익숙한 바다의 맛인 참치를 넣어 부드럽지만 담백한 참치김치찌개였다. 그런데 어묵 김치찌개라니... 어린 시절의 내가 생각하기에는 김치찌개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짝퉁 느낌이다. 더군다나 엄마가 끓인 이 음식은 봉 형태의 어묵을 어슷 썰어 김치와 함께 국물도 별로 없도록 오래 끓여 색이 칙칙하고 그 음식의 생김새가 옛날 못살던 시절의 음식처럼 느껴졌다. 어린 나는 눈으로 보이는 그 음식을 아주 싫어했다. 그래서 이 음식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 순간 의아했다. 내가 이걸 먹고 싶다고?

그러나 기억을 더듬어보니 비주얼 때문에 거부를 했으나 나의 입은 솔직했다. 가난한 느낌의 음식이라고 생각했지만 입안에 들어온 순간 나의 입과 기분은 풍요로워졌으니까. 김치는 오래 끓여서 입안에서 뭉그러지는 듯했고 어묵은 김치 국물의 맛을 머금고는 시고 달고 짠 여러 가지 맛을 담은 풍성한 맛이었다. 흰 밥을 숟가락에 떠서 김치와 어묵을 한 점씩 올려서 입안에 넣고는 빈 숟가락으로 국물을 얼른 떠 넣어 입안을 유연하게 해 주면 이보다 더한 밥도둑이 따로 없다. 엄마가 일을 하러 가느라 집에 해 놓은 어묵 김치찌개를 다른 반찬 없이 먹으며 '에이, 엄마는 만날 반찬도 안 해놓네!' 투덜거리면서도 밥은 두 공기씩은 기본으로 해치우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다른 반찬 좀 해놓으라고 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나 자주 어묵김치찌개를 해놓고 나가셨지.


어묵김치찌개를 끓여보기로 했다. 엄마와는 다르게 나는 요리처럼 예쁘게 끓이려고 마음먹었다. 주황색의 무쇠냄비를 꺼내서 육수를 내고 마늘, 고춧가루, 설탕과 함께 물을 넣어 김치를 바글바글 끓이고 마지막에 어묵을 넣기로 했다. 볼 형태의 볶음용 어묵을 사다가 넣었는데... 세상에! 홈런볼만 하던 그 어묵들은 부풀어 아기 주먹만 해졌다. 파를 잔뜩 썰어넣었음에도 볼품없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그 다음번에는 커다란 사각 어묵을 사서 한입 크기로 잘라 넣어봤는데.... 이번에는 그 어묵들이 가로세로 몸집을 늘리더니 마치 찌개 냄비를 덮는 뚜껑처럼 보였다. 어묵의 형태가 문제인 것인가! 나도 엄마처럼 봉형태의 어묵을 어슷 썰어 넣을까? 찌개를 식탁으로 옮기며 생각했다. 엄마도 사실은 예쁘게 만들고 싶었을 거야.

맛은... 엄마의 찌개가 국물이 적었다는 게 불만이었어서 국물의 양을 제법 많이 늘렸더니 예전의 그 맛이 아니다. 국물이 너무 없어서 '지졌다'라고 표현해도 좋을 엄마가 끓인 어묵김치찌개에 비해 깊은 맛이 부족하다. 그러나 이렇듯 아쉬운 마음이 한가득이지만 어묵김치찌개가 식탁의 중앙을 차지하는 그 날의 밥상은 마치 나의 역사를 새롭게 기록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도대체 엄마의 비결은 무엇이냐고 물어보고 싶다. 왜 엄마가 만든 어묵김치찌개의 어묵은 김치 한 점과 함께 흰 밥 위에 올려 싸 먹기 딱 좋은 사이즈였냐고. 육수를 내지도 않았고 별다른 재료를 더 넣지 않았음에도 그런 딥한 맛을 낼 수 있느냐고.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엄마는 14년 전에 돌아가셨다. 내가 아직 결혼도 하기 전, 엄마의 음식을 그리워할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하던 때이다.


엄마는 반주를 좋아했다. 어릴 적 나는 맥주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 아빠와 달리 늘 밥상 앞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엄마를 보며 입을 삐죽이며 싫어했다. 그러나 요즘의 나는 저녁밥상을 마주하고 소주잔을 입 안에 털어 넣고 김치찌개로 소주의 쓴 맛을 지우며 빙긋 웃음 짓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나도 이제 반주를 좋아하는 어른이 되어 내가 만든 음식들을 차리고, 엄마를 닮아 볼품없이 차려진 음식이 사실은 오늘을 마감하는 우리 가족을 위해 고민하고 만든 음식이었음을 아이들과 남편에게 어필한다. 잘 알아듣는 것 같지는 않지만.


오늘은 김치찌개를 끓여야겠다. 어묵을 잔뜩 넣어 지져서 소주와 함께 먹으며 가족들과 오늘 하루에 대해 이야기하고, 아이들에게 애정 어린 잔소리도 하고, 그리고 그리운 엄마를 기억해보는 것도 좋겠다. 나의 몸 안을 채우는 비릿한 어묵과 매콤 짭짤한 김치, 뜨끈한 국물로 인해 넉넉하고 편안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다. 내가 지은 저녁밥상에서의 이 시간을 위해 몇십 년 동안 엄마가 끓여준 이 맛을 기억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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