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 마라탕

by 김범인

일상의 무게에 압사당할 것처럼 지칠 때면 나는 자극적인 음식이 당긴다. 몸은 온 우주를 지고 있는 것처럼 무겁고 마음이 칼날처럼 날카로워지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위로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미각만은 나를 달래줄 특별한 방법을 알고 있나 보다. 미각의 호출에 나에게 자극이 될 음식이 소환된다. 그 자극들은 내 몸의 감각들과 감정들에 알 수 없는 반응을 불러일으켜 삶의 무게를 덜어준다.


나는 얼마 전부터 미각의 호출과도 같은, 내게 강렬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특별한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읽는 것을 좋아했지만 글을 쓰는 것은 다른 영역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글의 퀄리티에 연연하지 않고 쓰는 용기를 내니 신기하게도 감히 넘볼 수 없는 행위라고 생각한 글쓰기의 결과물이 나오긴 나왔다. 지금도 주술 구조 엉망이고 감정에 치우친 오글거리는 글이 태반이지만 첫 글은 그 정도가 지나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글을 쓰며 눈물이 났다. 앞만 보고 살아온 인생에 이렇게 뒤를 깊이 돌아본 적이 있었던가. 그저 인생의 표면만을 되돌아보던 나는 딱딱한 겉을 들추고 그 안의 복잡하고 설명 불가한 감정들의 소용돌이로 들어갔다. 온갖 경험과 감정들의 더께가 진, 규정할 수 없는 그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겹겹이 쌓인 일상들 사이에서 감정들은 화석이 되어 있었다. 한 겹 한 겹 기억의 막들을 걷어내다 보니 어느덧 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한 해의 정리를 하기엔 너무나도 이르지만 올 한 해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은 글쓰기 모임에 들어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은둔생활에 지쳐가고 있는 중 내가 참여하고 있는 독서모임에서 글쓰기 소모임이 꾸려졌다. 멤버들은 다들 얼마나 개성이 강하고 멋진지 처음부터 파이팅이 넘쳤다. 신문물과 문명의 발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즐기고 있는 이 글쓰기 모임의 리더인 N님, 문학적인 지식과 감정의 깊이를 자랑하는 독서모임의 리더 D님, 넘치는 에너지로 모임의 활기를 담당하고 책임감 강한 T님, 그리고 나. 매주 한 편의 글을 제출하는 일정에 왜인지 일주일은 꽉 차게 된다. 글쓰기가 이렇게 힘이 들고 자극적인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매주 한편을 제출하는 일정에 일상은 팽팽한 긴장감을 백그라운드로 깔고 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고민과 열정으로 점철된 일주일이라고 볼 수 있다. 어찌어찌 마감기한을 맞췄다고 끝이 아니다. 멤버들 글에 대한 피드백을 해야 한다. 칭찬은 달콤하지만 충고는 맵다. 글에 대한 평가는 늘 어려운 일이다.


한 달에 한번 있는 글쓰기 모임 날이다. 함께 글을 쓰는 그녀들을 만난다. 오프라인 모임은 글을 쓸 열정을 북돋아줄 촉매와도 같은 시간이다.


그날의 브런치 메뉴는 마라탕이었다. 마라탕은 한번 맛보면 자꾸만 생각이 나는 음식이다. 국물을 떠서 입안에 머금으면 독특한 향을 담은 뜨끈한 매콤함이 입안을 휘감는다. 압도적인 향에 취하고 오일리한 맵짠 국물의 무게감은 모임의 긴장감을 눌러주기에 충분하다. ‘아, 살 것 같다.’하는 만족감이 차오른다. 살짝 익힌 식재료의 식감은 국물의 존재감에 주눅 들지 않았다. 채소 본연의 아삭함, 면과 떡의 탄력과 쫄깃함, 고기와 어묵의 묵직함은 국물과 조화를 이룬다. 국물과 함께 건더기들을 오물오물 씹어서 꿀떡 넘기면 입 안에 얼얼하도록 매콤 짭짤한 여운이 남는다. 그 자극적인 여운을 잊지 못해 자꾸 마라탕을 찾게 된다. 맵고 짜고 달고 신 우리의 글쓰기 모임에는 왠지 이처럼 자극적인 음식이 어울린다.


아침 9시 반이 넘자 우리 집으로 그녀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마침 마라탕과 어울리는 비도 온다. 아침임에도 어두운 실내에 보글보글 끓는 빨간 국물은 마치 조명과도 같다. 우리의 시선은 식탁 위에 놓인 전골냄비에 모인다. 침이 고인다.


마라탕 끓일 준비가 대단할 것은 없다. 시판 마라탕 소스와 시판 사골곰탕 육수만 있으면 80%는 준비가 된 것이다. 왜 이렇게 성의 없는 요리냐고 묻는다면 머쓱해지지만 마라탕의 자극적인 맛을 재현하려면 대기업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변명을 하겠다. 국물이 준비되었으니 안에 넣을 재료를 푸짐하게 구비해두면 된다. 재료는 무얼 넣어도 좋다. 채소는 어떤 것이라도 좋지만 청경채와 고수는 꼭 넣어야 한다. 우리는 청경채, 고수와 함께 숙주, 쑥갓, 무를 넣기로 했다. 당면, 두부면, 라면사리와 떡은 포만감 영역을 충족시키기 위해 넉넉히 준비했다. 어묵과 버섯은 맛의 풍부함을 위해 많이 넣을수록 좋다. 고기와 분모자 당면이 빠져서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다.


캬~ 으음~ 꺄악~ 국물을 삼키고 우리는 제각각 탄성을 내지른다. 얼얼한 매운 국물에 비 오는 아침의 채도가 높아진다. 비 오는 창밖의 풍경처럼 우리를 둘러싼 배경은 한없이 투명해지는 것 같다. 우리의 감정이 더 풍부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입안에 가해지는 자극들은 우리의 감각들을 깨운다. 서로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고, 나의 이야기를 더 꺼내보이고 싶고, 서로의 눈을 더 깊이 바라보고 싶어 진다. 글을 쓰며 날카로운 마음을 갈아내고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이야기 나누며 자신을 누르던 짐들을 내던지게 된다.


이날 우리는 네 명이서 함께 완성한 릴레이 소설을 읽고 이야기 나누기로 했다. 기승전결 네 파트로 나누어 지렁이가 된 엄마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처음이라 그런지 하나의 이야기임에도 각각의 파트가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라 재미있었다. 공동작업이라 하기엔 각자의 색깔이 분명한, 분위기가 들쭉날쭉한 이야기라고 할까. 그러나 각자가 쓴 부분을 소리 내어 읽으니 왠지 모르게 글의 리듬이 살아난다. 자신이 글을 쓰던 상황과 생각들을 공유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각자의 색을 입은 글이지만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그날 우리는 글 쓰는 이야기와 앞으로 글을 써 갈 방향을 이야기했고 사는 이야기를 했다. 각자의 삶이 다른 방식으로 바쁘고 어렵고 고단하지만 글을 쓰며 잘 살아갈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글 역시 ‘생각하고 쓰기’라는 힘든 과정을 거쳐서 완성되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포기의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아성찰과 삶의 의미 발견이라는 또 다른 작업을 병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가며 매주 한 편의 글에 마침표를 찍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자꾸 글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나의 옛날이야기들을 쓰고 있다. 말하고 싶은 욕구와 숨기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나의 글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의 희열을 포기할 수가 없다. 내게 이런 자극을 주는 글쓰기는 마라탕과 닮았다. 나의 감각을 일깨우는 일상의 자극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다른 것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들은 맛있고 재밌다. 그게 최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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