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더덕 쟁탈전, 미더덕 콩나물볶음

by 김범인

추억의 '톡톡'이란 탄산캔디를 아시는지. 이것은 '베라31'의 메뉴 중 슈팅스타에 들어있는 입 안에서 톡! 톡! 튀는 캔디가 무려 한 봉지 속에 가득 들어 있는 다소 불량한 캔디인데, 어린 시절엔 아주 재미있고 즐겁게 즐겼던 간식이다. 미더덕을 생각하면 추억 속의 '톡톡'이 생각난다. 언제 어떻게 튈지 몰라 긴장하며 입안에 털어 넣는 ‘톡톡’처럼 미더덕을 씹었을 때 과연 어느 부위에서 품고 있는 뜨거운 국물을 뿜어낼지 몰라 긴장하는 것이다. 어금니에 ‘앙’ 무게를 실으면 미더덕은 폭죽처럼 입안에서 톡톡 터지며 축제를 벌이는, 눈을 감고 그 순간을 맞이하면 바다가 내 앞에 펼쳐지는 판타스틱한 음식의 재료이다.

나는 익힌 어패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특유의 바다의 맛을 잃어버리는 듯하기 때문이다. 특히 조개류는 품고 있던 수분을 빼앗겨 질긴 맛이 되어버리는 것이 싫어서 잘 먹지 않는다. 그런데 미더덕은 그와는 반대로 음식의 재료가 되는 순간 다른 모든 맛을 받아들인다. 바다의 향을 간직하면서도 그만의 포용력을 발휘하여 수만 가지 맛을 품는 것이다. 톡톡 터지며 그 안에 품은 바다와 같은 포용력을 내 입속에 펼쳐주는 아찔함이 좋다.


엄마의 콩나물볶음은 다른 집의 콩나물볶음과 달랐다. 바닷가 마을이 고향인 엄마는 해산물을 좋아하셨다. 그런 엄마의 취향을 반영하여 다른 집에서는 평범한 밑반찬일 콩나물볶음을 우리 집만의 반찬으로 만드셨다. 울긋불긋 당근채나 송송 귀엽게 썰어 넣은 파와 함께 볶아 예쁘고 소박하게 접시에 담긴 반찬이 아니었다. 우락부락 생긴 것도 민망한 미더덕이 콩나물과 버무려 볶아져서 산처럼 쌓여 있는, 일을 마치고 돌아온 돌쇠가 고봉밥에 곁들여먹을 단 한 가지 반찬이었을 비주얼이었다. 그런데 나와 동생들의 눈에 그 콩나물볶음이 얼마나 먹음직스러운지 일단 뒤적뒤적하여 미더덕을 발견하면 콩나물과 함께 휙 잡아채어 입속으로 넣고는 눈을 감고 톡톡 씹는 것이었다. 눈을 감는 것은 의도된 것이 아니다. 바다를 받아들이기 위한 우리의 의식이다. 뜨겁고 짠 국물이 입안을 긴장시키며 솨아아~ 퍼지는 순간 입안에 바다가 펼쳐지므로. 그 순간 입안의 콩나물은 본연의 아삭하고도 담백한 맛이 바다와 만나 채소만의 도도한 품격을 자랑한다.

나와 동생들은 미더덕이 들어간 콩나물볶음이 식탁에 올라오는 날에는 그야말로 돌쇠가 된다. 다른 반찬은 필요 없다. 고봉밥과 콩나물볶음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열심히 톡! 톡! 오도독 오도독 먹다 보면 그릇 안의 미더덕은 금세 사라져 버리고 만다. 몇 점 남지 않았다고 느껴질 무렵부터는 눈치싸움이다. 콩나물 사이로 미더덕을 발견한 즉시 잡아야 한다. 쟁탈전에서 밀려 미더덕 쟁취에 실패했을 시에는 일단 눈을 들어 동생의 입안으로 들어가는 미더덕을 바라본다. 오도독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짧은 비명. 그러면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그것 봐! 천천히 씹었어야지~ 입 다 데겠네~’ 하고 약 올리는 것이다. 나의 바다를 빼앗아간 적에게 미소를 보내며 다시 콩나물 사이사이를 탐색하여 미더덕을 찾는다.


조금 더 커서 아귀찜을 먹게 되었을 때 그 근사한 비주얼에 놀랐다. 엄마의 콩나물볶음과도 비슷하게 생겼는데 빛깔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빨갛고 찐득한 양념장에 버무려진 콩나물과 채소들, 통통한 흰 살 생선, 그리고 그 사이사이 숨어있는 미더덕. 생선에 곁들여먹는 콩나물과 채소들의 빨간 맛은 어른의 맛 같았고 찐득한 양념장은 밥에 슥슥 비벼먹으면 밥 한 그릇쯤이야 뚝딱인 것이다. 그런데 참 아쉬운 것은 미더덕이었다. 턱없이 적은 양이라 아쉬운 것은 둘째 치더라도 엄마가 해준 콩나물볶음 속의 미더덕에 비해 시원한 맛이 부족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콩나물과 파의 수분과 약간의 양념만으로 볶아낸 음식이니 미더덕의 향이 더 깊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바닷가 마을에서 자라 바다의 맛을 사랑하던 엄마의 손 맛은 누구도 따르지 못할 테지.


다른 사람들에게 미더덕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음식이라는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미더덕은 국물을 내기 위한 재료로 생각하거나, 품고 있는 국물을 먹고 뱉어내는 껍질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내가 미더덕을 골라 입속에 넣어 눈을 감고 씹는 모습을 신기하게 보곤 했다. 나와 동생들에게는 마치 수렵채집인의 동물적 감각과 재빠름으로 그 날의 질 좋은 양식을 저장하듯 입안에 넣어 배를 채웠는데 말이다. 내게 미더덕은 뽀빠이 과자 속에 들어있는 별사탕처럼, 발견하면 즉시 손을 뻗어 선점해야만 하는 조개 속의 진주 같은 존재이다. 누가 뭐라 하든 바쁘고 지친 일상에서 만나는 바다가 이렇게 가까울 수 있다는 게 행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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