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사진처럼 하나의 장면으로 기억되는 노래가 있다.
침대를 둘러싼 커튼을 젖히자 흰색 시트가 깔린 침대의 등받이를 올려 기대어 누운, 올리브색 두건을 쓴 엄마가 나를 바라보신다. 왼손에 꽂혀있는 주삿바늘과 그에 연결된 줄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엄마의 오른손에는 다른 물건이 들려있는데 그것으로부터 연결된 하얀색 줄은 귀에 꽂혀 있다. 엄마는 그날도 박상민의 노래를 듣고 계셨다. 그때 그 장면은 하나의 음악과도 같이 내 가슴에 새겨졌다.
유방암으로 오랜 기간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엄마는 내게 듣고 싶은 노래가 있다고 하셨다.
“박상민 노래 알지? 요즘 그 가수 노래가 너무 좋더라.”
당시는 mp3 플레이어라는 기기가 지금처럼 흔하디흔한 기기가 아니던 시절이었다. 더군다나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기계치에 가까웠기 때문에 음원을 기기에 넣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다. 나는 엄마에게 가져다 드릴 CD플레이어를 구입하려 했었는데, 나의 남자 친구는 자신에게 용량이 작아서 쓰지 않는 mp3 플레이어가 있다며 박상민 앨범을 꽉꽉 눌러 담아 나에게 주었다. 그래 봐야 겨우 20곡정도 담을 수 있는 mp3 플레이어였지만 수천 곡을 담은 뮤직박스보다 거대한, 아니 그 거대함을 응축한 나의 마음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 물건이었다.
엄마의 손에 회색의 기기를 손에 쥐어 드렸다.
“이건 이렇게 음악을 재생하고 저렇게 멈추고, 충전은 이러저러하게 해야 해.”
나의 설명을 들은 엄마는 음악을 재생했다. 그리고 “너도 들어볼래?”라며 한쪽 이어폰을 빼 주셨다.
그때 듣던 박상민의 ‘하나의 사랑’은 잊을 수가 없다. 텔레비전에서, 라디오에서 듣던 어른들이 좋아하던 유행가가 이렇게 슬픈 리듬과 가슴 아픈 노랫말이었던가.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드는 화려하고 시끄러운 노래를 즐겨 듣던 나는 가만히 앉아서 한쪽 귀로만 흘러들어오던 리듬에 온 마음이 내려앉는 순간을 경험했다. 하나의 음악을 나눠 들은 시간 때문일까, 엄마와 더 가까이 붙어 있었던 그 공간 때문이었을까. 그 이후로 병원에 갈 때마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던 엄마, 그리고 그 회색 기기에 눈이 가면 음악을 함께 듣던 순간의 기억이 잊히질 않았다.
엄마의 왼손에 꽂힌 주삿바늘을 통해 혈관을 따라 흐르는 약물처럼 오른손에 들린 회색 기계에 연결된 음악은 영혼을 통과하는 약물과도 같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 하얀 줄을 통해 전달되는 선율과 노랫말들은 엄마의 귀를 거쳐서 가슴으로 전달되었을 텐데 난 엄마의 표정과 몸짓으로도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나는 유행하는 음악이 있으면 열심히 따라 불렀고 좋아하는 가수의 신곡이 나오면 열광했다. 선율은 나의 몸을 타고 흐르고 노랫말은 나의 영혼을 마취시켰다. 그 음악을 부르는 가수의 몸짓이나 말들은 일상의 많은 부분을 지배하곤 했다. 그러나 당시의 열기가 식으면 내 마음에 새겨졌다고 믿었던 의미도 사그라들었다. 인생의 한 때를 물들이긴 했으나 내 인생을 설명해주는 노래나 오래도록 의미를 간직한 노래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누구나 알거나 부르는 노래를 듣고 부르고 잊었다.
그러나 평범한 어느 날 라디오를 듣거나 T.V.를 보다가 예상치 못하게 박상민의 ‘ 하나의 사랑’이 귓가에 들려올 때면 이어폰을 통해 음악을 듣고 있는 엄마가 생각나서 가슴이 쿵 떨어지곤 한다. 그리고 그날의 엄마와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그때 조금만 더 살가운 딸이었다면 어땠을까. 그 음악을 들으며 같이 흥얼거렸으면 어땠을까. 그 mp3 플레이어에 음악을 담아준 당시의 남자 친구가 지금은 큰 딸의 남편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엄마도 알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거듭할수록 그때의 기억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렇지만 그날을 기억할 노래가 있다는 사실에 내 마음의 빈틈이 메워지는 기분을 느낀다. 엄마가 그 음악을 듣던 그날과 비슷한 나이로 한 발자국씩 다가가고 있는 나는 다시 마음을 전달하지 못하던 소심한 그날의 내가 된다. 그리고 무뚝뚝한 딸을 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음악은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엄마와 나의 추억에 의미가 더해지고 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