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을 충분히 해왔으니 떨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마음과 달리 번호표를 받자 무참히 무너졌다.
청심환이라도 하나 먹고 왔었어야 했나?
수험생들이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환복을 했다.
몇 칸 되지 않는 화장실을 탈의실처럼 한 사람씩 사용하려니 시간이 지체되었다.
이럴 땐 여자들만의 우정 표현인 화장실 한 칸을 같이 쓰기 작전을 사용했다.
초중고 여자 학교를 나왔을 때 단짝과의 우정을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였던 화장실 한 칸 같이 가기.
진짜 친구임을 주변에 과시하는 방법이었다.
요리실습을 하며 우정도 다졌으니 남은 몇몇이 같은 화장실 한 칸에 들어갔다.
학원 강사의 마지막 조언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을 이루기 위해 우린 백의민족이 되었다.
흰색 조리복은 기본이었고 흰 바지, 흰 양말, 흰 실내화, 머리는 검정 망으로 단정히 묶어 흰색 머릿보를 야무지게 묶었다.
"아까 봤니? 백색 인간들?"
"그게 뭐야?"
"아줌마들 시험 보러 온 거. 신발까지 흰색으로 신었더라?"
"정말? 하하하. 열심히네."
화장실 문밖에서 용변을 보고 손을 씻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험을 보러 온 학생들인 모양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가지 못한 채, 화장실 한 칸 좁은 공간에서 앞에 선 동기와 눈을 마주쳤다.
드라마에서 화장실 변기에 앉아있을 때 밖에서 험담을 하면 나가지 못하고 분노하는 이유를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옷매무새를 끝내고 문을 열고 보니 그들은 사라진 후였다.
뭐 마주했다 한들 무엇하리.
그들의 말대로 우리는 온통 하얀 백색 인간이 맞았다.
흰색으로 중무장한 백색 전사...
시험이 시작되고 옆자리 동기가 손이 베었다.
그녀는 교묘하게 행주를 하나 집어 손가락을 지혈하며 행주를 꽉 쥔 채로 시험을 봤다.
다른 동기는 뜨거운 물을 버리다가 튀는 물에 살갗이 금세 붉어졌다.
그녀도 찬물을 계속 틀어 그릇을 씻고 재료를 다듬으며 뜨거운 물에 덴 화기를 눌렀다.
모두 임기응변이 대단했다.
그렇게 우리의 "국수장국과 무숙 장아찌라"는 제시 과제가 마무리되었다.
끝이 나니 모두 힘이 빠졌다.
머리 위에 쓴 머릿수건이 땀에 배어 있었다.
백색 인간 우리는 시험을 끝내고 합격증을 받아왔다.
학원 수강생 전원 합격이었으니 모두 부둥켜안고 축하해주며 이별을 했다.
그 시절 백색 인간은 100점 인간이었다.
나이, 성별 없이 꿈을 위해 피나는 노력하고 포기하는 이를 다잡아 함께했던 그들과 진정한 100점짜리 인생의 맛을 함께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