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차주

1. 경차 오너, 작은 차 넓은 마음

by stamping ink

1980년대 이후 마이카 시대를 맞이한 대한민국의 도로에는 수많은 차들이 도로를 달리고 있다.

당시 10대였던 나에게도 언젠간 마이카를 타고 원하는 장소까지 달리는 상상에 빠지곤 했다.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 20대에 도달함과 동시에 도전을 하였다.

원정시험을 볼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던 시절이었다.

시험의 열기만큼이나 나 역시 몇 번의 낙방을 거쳐서야 내게도 운전면허증이 쥐어졌다.

운전면허 합격을 한 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고 나의 간절한 바람은 직장생활을 먼저 시작한 언니 소유의 차를 몰아보기였다.

간도 쓸개도 아니 오장육부도 다 내어 줄 간신배로 불리더라도 언니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오랜 공을 들인 어느 날, 인심 쓰듯 내어주는 자동차 열쇠를 받아 들고 나니 세상을 다 갖는 기분이었다.


막상 핸들을 손에 쥐고 마음은 미하엘 슈마허였지만 도로 위에서는 거북이걸음보가 되어 버렸다.

도로에서 함께 달리는 차의 텃세는 상당했다. 초보의 주춤거림은 용납되지 않았다.


골목길에서 마주하는 자동차를 만나던 날, 자동차 창문을 내린 험악한 아저씨가 뒤로 빼라 손짓을 했다.

전진도 미숙한데 후진이란 기능은 아직 탑재된 능력이 아니었다.

차문을 열고 뛰어나온 아저씨가 나를 보조석으로 밀어 앉히곤 대신 운전석에 올라탔다.

아저씨의 선행이라 생각했지만 그의 입에서는 잔소리 폭격이 쏟아졌다.


연습을 제대로 해서 나와라.

초보면 골목을 들어서면 안 된다.

어린 여자가 무슨 차를 몰고 다니냐.


눈물이 찔끔 날 폭언에도 차를 골목 앞까지 빼 준 것에 아저씨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바보였나 보다.

일방통행 골목에서 내가 진입하는 방향이 맞는 방향이었는데 내가 잘못한 게 없다는 말 한마디를 못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바로잡아보려 맞서겠지만... 그 시절 그때는 나는 어리고 여렸으니까..


그 후로 운전을 주저했다.

운전면허증의 용도는 신분증 대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주민등록증은 안 가지고 다녀도 운전면허증은 지갑에 꼽고 다녔다.

그렇게 사람들이 말하는 장롱면허가 시작되었다.


신분증 대용으로만 전락한 운전면허증이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였다.

아이를 다 키우고 다시 사회생활을 하려는데 운전을 해야 하는 사황이 벌어졌다.

출퇴근 거리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1시간 20분... 직선거리로 운전해서 가면 30분...

운전이 자신 없었지만 긴급상황엔 가까운 거리 운전을 했기에 연수를 받고 나면 괜찮지 않을까?


그 후로 자동차 타령이 이어졌다. 나의 타령이 구슬펐는지, 하늘이 감동했는지 나에게도 기회가 생겼다.

때마침 가족 차량 중 노후된 차량의 보상판매로 저렴히 구매할 기회가 생겼는 게 필요하면 대신 이용하라는 기가 막힌 타이밍이 내게 쥐어졌다.


그렇게 나의 마이카가 생겼다.

하얀색 경형승용차였다.

흰색 구름처럼 둥실둥실 예뻐서 '구르미'라 이름도 지어주었다.


구르미와 나는 출퇴근을 함께 하기로 했다.

경차를 몰게 될 나에게 경차를 먼저 몰고 있던 지인이 조언을 해주었다.

"경차는 도로를 다닐 때 차는 작지만 넓은 마음으로 다녀야 해."

지인의 조언은 며칠가지 않아서 몸으로 체득되었다.

경차 앞으로 무자비하게 밀고 들어오는 수많은 차량들.

녹색 신호에 잠시라도 늦게 출발하면 다그치는 클락션 소리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양희은 님의 '그럴 수 있어'를 여기에 써도 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도로 위에서는 어떤 말보다 큰 도움이 되는 말이었다.

나는 마음만은 넓은 경차 오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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