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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mping ink Jan 10. 2022

나도 차주

1. 경차 오너, 작은 차 넓은 마음

1980년대 이후 마이카 시대를 맞이한 대한민국의 도로에는 수많은 차들이 도로를 달리고 있다.

당시 10대였던 나에게도 언젠간 마이카를 몰며 원하는 장소까지 달리는 상상에 빠진 곤했다.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 20대에 도달함과 동시에 도전을 하였고 원정시험을 볼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던 시험을 몇 번의 낙방을 거쳐 드디어 내게도 운전면허증이 쥐어졌다.

운전면허 합격을 한 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고 나의 소원은 직장생활을 먼저 시작한 언니의 차를 몰아보기였다.

간도 쓸개도 아니 오장육부도 다 내어 줄 간신배로 불리더라도 언니가 기분 좋은 날 인심 쓰듯 내어주는 자동차 열쇠는 세상을 다 갖는 기분이었다.


막상 언니의 작은 차로 도로에 나서면 마음은 미하엘 슈마허였지만 도로 위에서는 거북이걸음보가 되곤 했다.

친구들을 태워 주거나 번잡한 곳을 가기에는 도로에서 함께 달리는 차들이 용납하지 않았다.


골목길에서 마주하는 자동차와 만났을 때, 자동차 창문을 내린 험악한 아저씨가 뒤로 빼라 손짓을 했다.

전진도 덜덜 떠는 나에겐 후진이란 탑재된 능력이 아니었다.

차문을 열고 뛰어나온 아저씨가 나를 보조석으로 밀어 앉히곤 대신 골목길 앞까지 차를 후진시켜주었다.

반강제적인 후진을 하며 옵션으로 길고 긴 잔소리를 해댔다.


연습을 제대로 해서 나와라.

초보면 골목을 들어서면 안 된다.

어린 여자가 무슨 차를 몰고 다니냐.


그런 폭언에도 차를 골목 앞까지 빼 준 것에 아저씨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바 보였었나 보다.

일방통행 골목에서 내가 진입하는 방향이 맞는 방향이었는데 내가 잘못한 게 없다는 말 한마디를 못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잘못된 상황을 정정했을 텐데... 그땐 어렸으니까...


그 후로 운전을 주저했다.

그래도 운전면허는 있다는 허세는 부리고 싶었는지 운전면허증의 용도는 신분증 대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주민등록증은 안 가지고 다녀도 운전면허증은 지갑에 꼽고 다녔다.

그렇게 사람들이 말하는 장롱면허가 시작되었다.


신분증 대용으로만 전락한 운전면허증이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아이를 다 키우고 다시 사회에 돌아간 후였다.

출퇴근 거리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직선거리를 돌고 돌아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운전이 자신 없었지만 종종 가까운 거리 운전을 했기에 마이카에 마음이 생겼다.


그 후로 자동차 타령이 이어졌다. 나의 타령이 구슬펐는지 하늘이 감동했는지 기회가 생겼다.

때마침 가족 차량 중 노후된 차량의 보상판매로 저렴히 구매할 기회가 생겼는 게 필요하면 대신 이용하라는 기가 막힌 타이밍이 내게 쥐어졌다.


그렇게 나의 마이카가 생겼다.

하얀색 경차였다.

흰색 구름처럼 둥실둥실 예뻐서 '구름이'라 이름을 지어주었다.


구루미와 나는 출퇴근을 함께 하기로 했다.

경차를 몰게 될 나에게 경차를 먼저 몰고 있던 지인이 조언을 해주었다.

"경차는 도로를 다닐 때 차는 작지만 넓은 마음으로 다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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