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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mping ink Apr 03. 2022

밤길

15. 라이트

지인들과의 오랜만의 만남은 사람들이 말하는 시간의 순삭을 경험하게 해 준다.

그 사이 못 본 긴 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떠들다 보니 밤이 점점 깊어갔다.

모임 장소로 선택한 화려한 조명의 카페는 하루 종일 낮처럼 밝아 시간이 늦어지는 것을 체감할 수 없었다.

"벌써 9시가 넘었다."

모두 오랜만에 만난 사이라 늦겠다고 각자의 집에 으름장을 놓은 상태라 찾는 이도 없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던 이의 눈에 보인 시곗바늘에 아쉬움을 털고 일어섰다.

헤어짐의 인사는 테이블 앞에서 카페 문 앞에서 주차장 차 앞에서 계속되었다.


비슷한 방향끼리 네 대의 차가 출발을 했다.

낯선 길이기에 운전에 능한 이가 앞을 달려 길을 내어주기로 했다.

운전에 능숙지 못한 나는 세 번째 차량으로 그들을 꽁무니를 따라 길을 따라갔다.


가로등이 밝은 도로 위에 차들이 많지는 않았다.

일열로 달리는 차들은 속도를 내지 않고 정속으로 달려갔다.


번쩍번쩍..

뒤의 차가 내게 상향 등을 보냈다.

장난기도 많고 친분이 깊은 사이라 장난이라 생각하며 앞만 보고 달렸다.

초행길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마음이라 생각했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말했다.

"뒤차에 운전 누가 하지? 자꾸 상향 등을 쏴대는데?"

내가 운전을 하느라 옆자리 친구가 뒤차 조수석에 탄 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 왜 자꾸 우리한테 상향 등을 보내는 거야. 우리 놀랜다고~~"

애교 많은 옆자리 친구의 목소리는 그녀의 휴대전화 스피커폰을 통해 뒤차에 울렸다.

뒤차 운전자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쪽 차량 조수석의 친구들의 스피커폰의 대화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너희 라이트 안 켜고 달리고 있어."

순간 나는 식은땀이 났다. 도로가 밝다 보니 라이트를 켠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재빨리 손으로 라이트를 조작하려는 순간 내 조수석 친구의 말 한마디에 모두 얼어버렸다.


"우린 밤 눈 밝아서 괜찮아."

이 친구는 푼수라는 별명에 어울리듯 어려서나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순수함을 가지고 있었다.

밤눈이 밝더래도, 밤길이 익숙한 길이라 하더래도 실수하지 않도록 라이트를 오토라이트 기능으로 변경하였다.


밤길 조용히 옆으로 다가와 놀라지 않도록 내가 그런 차가 되지 않도록...

나보다 남의 상황을 생각하며 도로 위를 달려가듯 오늘도 다른 이의 마음을 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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