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의 이야기가 궁금한지 은별이는 지숙에게 재촉 했다. 긴머리카락을 손으로 빗겨주다가 은별이의 머리를 콩 쥐어박았다.
"어때? 간식 먹으면서 이야기할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식탁에 앉을때까지도 은별이는 조잘댔다.
"애들 참 나쁘다. 친구라며? 근데 그런 심한 말을 했대? 그래서 햇살이는 어땠는데? 가서 화내고 머리채라도 잡아야지. 그걸 그냥 둬?"
식탁의자를 빼고 자리에 앉는 내내 은별이는 자기일처럼 화를 내며 소리나게 자리를 앉았다. 이미 식어버린 기름 흠뻑 먹어버린 부침개를 한쪽에 밀어내고 다시 가스 불을 당겼다. 부침개가 소리나며 다시 부쳐졌다. 고소한 내음이 한 접시에 담겨 은별이 앞에 내려놔졌다.
햇살이는 그 이후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몇몇 눈치빠른 아이들은 햇살이의 눈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아직은 어려 철없는 아이들이 배려해 줄만한 일은 없었다. 호기심이 앞서 햇살의 마음은 들여다보지 않고 원하는 대답만 가져갔다.
"야. 햇살! 너 눈 돌아갔어. "
드라마 고백도 아니고 슬쩍 다가와 던지고 지나가는 말들이 하나같이 햇살에겐 비수였다. 병원진료비도 어마해서 더이상 병원은 가지 않았다. 어쩌면 크면서 좋아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만 품고 점점 햇살의 한쪽눈 시력은 사라져갔다. 아무도 알 수 없이 조금씩 사라져갔다.
햇살이 그렇게 중학생이 되었다. 동네아이들은 새로 생긴 집 근처 중학교에 배정을 받았지만 햇살은 버스로 30분은 가야 도착하는 중학교에 배정이 되었다. 부모님은 자식들의 교통비 걱정에 근거리가 되길 바랬지만 햇살마저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해야하는 상황이니 불만이 많으셨고 햇살이 중학교에 입학하던 시점부터 사복이 아닌 교복이 생긴 1세대라서 생각치 않게 교복비까지 지출하다보니 바로 알 수 있는 것은 식사시간이었다. 풍요로운 반찬은 아니었지만 반찬수가 하나씩 줄어들었다.
중학생이 되고 햇살이 제일 좋은 것 중 하나가 단발머리였다. 아마 다른아이들이라면 의아해할 일이지만 햇살에겐 단발머리를 하기 위해 미용실을 갈 수 있는 것이 즐거웠다. 어머니의 미완숙한 실력으로는 학교규정을 맞출 수 없었다.
"...앞머리 내려주세요."
전신거울이 달려있는 미용실 의자앞에 앉아 커트보가 목을 조르면 웅얼거리며 미용사에게 햇살을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동네에 유일한 미용실이었고 낮시간 뽀글거리는 파마 손님이 다 지나가고 오후 시간대 한가한 손님이라 미용사도 햇살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참 예쁠 나이인데 앞머리 올리고 다니는게 어때? 앞머리 기르면 앞 이마에 여드름도 날껄?"
걱정해 주듯 슬쩍 앞머리를 위로 올리는 미용사의 화려한 메니큐어 칠한 손톱이 눈앞을 스쳐다닌다. 그녀의 손길에 고개를 더 깊이 숙이고 햇살을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예요. 그냥 길게 잘라주세요."
미용사 손길이 햇살의 고개를 위로 올려 앞머리를 조심스레 잘라준다.
"넌 해바라기처럼 예쁘게 생겼는데 왜이리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거야? 쪼그라기같이."
어디서 만든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햇살은 쪼그라기라는 말이 본인에게 딱 맞다고 생각했다.
3년 내내 햇살이의 모습은 한결같았다. 안보이는 한쪽눈을 앞머리로 내리고 지냈지만 휴일 평상에서 오전에 내리는 햇살을 맞이할때만은 보이지 않는 눈에도 기회를 주었다. 햇살의 차가워진 마음을 데우는 시간은 분홍빛으로 물든 눈으로 하늘을 보는 것이 유일한 친구같은 시간이었다.
"아..여드름약, 엄마 여드름약 사 왔어?"
은별이의 이마에 작은 좁쌀 여드름이 올라오고 있었다. 앞머리를 하나로 모아 커다란 똑딱핀을 소리나게 꼽고 약병에 담긴 액체를 이마에 콕콕 찍어댔다. 한손에는 부침개를 먹느라 젓가락을 쉬지 않고 움직이고 한손으로는 여드름을 거울도 보지않고 약을 바르는 모습에 지숙은 웃음이 터졌다.
"하나만 해. 어떻게 약을 바르며 부침개를 먹니?"
"얼릉 먹고 숙제해야 한단말이야. 학원숙제 안하고 가면 원장님한테 혼나고 그럼 엄마한테 전화할텐데 괜챦겠어?"
꼭 지숙을 위해 공부한다는 듯이 말하는 것이 얄밉기도 했지만 속상했던 일이 언제였나 싶을정도로 씩씩하게 먹어대는 모습이 우수워 지숙은 다시 가스렌지 앞으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