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암호

29. ==========

암호

by stamping ink

시원한 가을바람이 이제는 초겨울 냉기를 품고 뺨을 스쳐간다.

팔에 새겨진 레터링의 상처가 다 낫기도 전에 더디게 오길 바랐던 그날이 다가왔다.


작은 기숙사 방에 있던 수빈의 짐은 이미 캐리어에 담겼다.

빠진 것이 없는지 방을 둘러보던 채비서가 수빈의 어깨를 두드렸다.

종이컵 전화기를 흔들며 말했다.

"이것도 챙겨가게?"

방 안에 어떤 물건도 관심이 없어 보였던 수빈이었지만 종이컵을 보는 순간 눈이 반짝였다.

채비서는 책상 위에 놓여있는 보물상자에 조심스레 종이컵 전화기를 넣었다.


"너희 엄마. 내 친구인 거 알지? 이젠 수빈이도 이거 하나는 알아줬음 해서."

보물상자를 건네주며 채비서가 수빈과 마주하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어른들의 사정을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거야. 너희 엄마는 누구보다 가정을 지키려 했어. 하지만 아빠는 엄마와 수빈이 말고도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어. 어쩌면 엄마는 수빈이를 지키기 위해 아빠를 떼어 논 걸지도 몰라. 나중에 수빈이가 더 단단해지면 그땐 알게 될 거야."


수빈은 채비서의 입모양을 보고 핸드폰에 글씨를 열심히 적었다.

'이모, 저도 알아요. 아빠에게 다른 가정이 있다는 걸. 저보다 어린 동생이 있다는 것도 알고요.

저도 이제 단단해지려 해요. 이젠 제가 엄마의 웃음을 찾아드릴 거예요.'

채비서는 조용히 수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내일 보자."


텅 빈 기숙사 방에 캐리어 두 개와 수빈만 남겨졌다.

'이제 가야지.'

그리움이 알 수 없는 허기짐으로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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