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탓

[쉼 수필]

by stamping ink

나에게 보이는 세상은 절반이다.

지금의 의학 수준이라면 충분히 고칠 수도 있을는지도 모르지만 어린 시절 나의 부모는 막아볼 금전적 여유도 능력도 갖지 않았다.

방치된 나의 왼쪽 시력은 허무하게 사라져 갔다.


왼쪽 눈이 나를 괴롭힐 때가 많았다.

일에 몰두라도 할라치면 희미하게 남은 뿌연 잔상을 오른눈에 비쳐 괴롭혔다.

사물을 두 개로 보여 어지러움을 쫓아내려 애쓰려 두통약과 눈물을 함께 삼켰다.

반만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지만 불편한 것을 다른 대응 방법으로 대체하며 살아간다.

남에게 없는 절반만큼을 두배의 힘을 들여 헤쳐나가야 했다.


시각 경증이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해서 배려 없이 묻는 이들도 있고 호의를 가장해서 나의 아픔에 위로를 받고 가는 이들도 있다.

'양 눈이 다 보이 않는 것보단 다행이지 않아요?'

'저도 노안이 와서 잘 안보이더라고요'

위로의 말로 포장해서 건네는 한마디가 닫힌 마음에 공감을 잘못짚어 상처를 더 깊이 파고들기도 했다.

스스로 문제를 남 탓으로 돌려도 일렁이는 기분을 잠재워보려 했었다.


우그러진 외눈 망막처럼 나의 마음도 우그러져갔다.


오른눈도 나빠지는 것을 막아보려 병원에 앉아 정기검사를 받을 때 장애판정 내려주셨던 선생님이 나에게 말을 해주셨다.

"왼 눈이 애쓰는 거야. 원래 이 정도 각막이 우그러지면 오른눈으로 바로 넘어가는데 왼눈이 버텨주는 거야, 많이 오래 보라고 도와주나 보다."


왼눈 탓을 했었다. 안 되는 모든 것에 대한 핑계를 외눈에 달았었다.

숨겨진 고마움을 아픔 때문에 보지 못했다.

왼눈만 뜨고 세상을 보면 삐뚤어져 남의 탓만 보던 여기저기 일그러진 마음 대신 번지듯 환한 빛만 가득하다.

따스하게 마음의 눈을 뜬다. 오늘도 왼눈 덕분에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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