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구심을 믿음으로 바꾸다
존재하는 수많은 단어. 그중 유독 사랑하는 몇 개의 것들이 있다. 대개 이것들은 긍정적인 힘을 지니고 있어 왠지 모를 몽글함을 선물한다. '시작'이란 단어도 그렇다. 상상만으로 결과를 떠올리게 하고, 그 과정을 아름답게 꾸며 모든 할 수 있게 만든다.
올해는 유독 시작이란 단어가 중요하게 느껴진다. 프리랜서로서의 첫 삶이 시작되었기 때문이겠지. 계획보다 조금은 이른 시기 사회에 내던져진 기분을 무한히 느끼는 지금. 내겐 주문이 필요하다. '잘할 거야, 잘할 수밖에 없어'와 같은. 하지만 이따금씩 찾아오는 불안감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잘할 거라는 믿음에서 잘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내 자신감을 갉아먹고 있음을 느끼는 걸 보면.
의구심을 줄이는 건 매일매일 치열하게 사는 방법밖엔 없는 듯하다. 일 년이라는 지구를 잘게 쪼개 한 달이라는 국가로 분리하고, 하루하루 나만의 왕국을 건설하자. 사고가 나지 않는 도로를 만들고, 예쁜 집을 짓고, 멋진 산과 바다를 만들자. 그러다 보면 어느새 마음 깊숙이 뿌리내린 믿음을 만날 테니.
땅을 다듬자. 시작과 가장 잘 어울리는 특별한 날을 빌려. 산을 올라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그곳에 소원을 담아 남은 364일의 안녕을 빌자. 내 특별한 새해는 한라산과 함께 하자.
새벽 두 시 반부터 시작된 산행. 차곡차곡 쌓이는 걸음 끝엔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과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존재했다. 오르면 오를수록 거세지는 바람과 낮아지는 온도. 이는 손끝을 아리게, 발가락을 얼어붙게 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심해지는 고통. 포기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 생각했다. 지금의 감정이 남은 364일과 같다고. 분명 이보다 힘든 순간은 찾아올 거고, 그럴 때마다 아픔은 더 고통스럽겠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포기할 수 없어 더 악착 같이 올랐다. 지금 이 순간 포기하면 나는 또 힘든 순간 도망칠 게 분명하니.
정상에 다다랐을 때, 낮게 깔린 구름 위로 태양이 떠올랐다. 분명 매서운 바람도, 극한의 추위도, 느껴지는 고통도 극에 달했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만큼은 이상하리만치 평화로웠다. 이루었다는 성취감 때문일까. 혹은 고통이 무뎌졌기 때문일까. 아련하게 빛나는 따스한 햇살은 내게 말했다. 의구심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바꾸었기에 그런 거라고.
하루를 통해, 시작을 통해 배운 끝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 단단하게, 또 평평하게 다듬은 땅 위에 많은 것을 뿌리내릴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남은 364일이 지나고, 마지막 하루가 남았을 때, 다시 이 글을 읽고 싶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나의 믿음이 한 해 끝에서 아름답게 꽃피었다고.
2023.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