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같은 팀 직원과 사무실에 단 둘이 있을 때였다. 그가 문득 내게 물었다.
"혹시 마피아게임 해본 적 있어요?"
나는 한 두 번 해보긴 했지만 전혀 흥미롭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직원은 빙긋 웃더니 그럴 줄 알았다면서, 내가 자신과 마피아게임을 하면 엉엉 울지 모른다고 했다. "아마 모든 사실을 알고 나면 '어떻게 저한테 그럴 수 있어요!' 하실 걸요?"
그는 내게 종종 '착하다'고 했다. 착해서 웬만하면 싸움을 안 할 것 같다고. 하더라도 내 편에서 먼저 사과할 거라고. 그의 눈에는 내가 남에게 마음을 잘 의탁하고, 배신 당하면 깊이 상처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비친 모양이었다. 그 눈을 바라보며 나는 눈웃음을 지었다. "오, 제가 그럴 거 같으세요?"
거듭 그렇다고 했다. 나는 잠시 의자에 머리를 기댔다가 그를 다시 보았다. "그러네. 그럴 수도 있겠어요." 그리고 대화는 끝났다.
실은 그 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구태여 할 필요 없어 안 한 말.
누굴 믿어야 배신을 당하죠.
설마 나를, 당신을 '믿는' 사람으로 믿은 거냐고 되묻고 싶었다. 그랬다면, 어쩌자고 그렇게 순진하냐고.
나는 마피아게임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를 속이는 게임이 새삼스레 왜 존재하는지, 그게 어떤 대목에서 재미를 유발하는지 모르겠다. 게임이 아니어도 나는 순간순간 남을 기만한다. 숨 쉬듯 '척'한다.
업무에 일말의 성의도 책임감도 없는 사람이 자신의 과거가 어쨌니 저쨌니 허풍을 떨면, 속으로는 경멸하면서 겉으로는 참 훌륭하다고 추임새를 넣는다. 하루에 몇 번씩 감정이 널뛰는 사람을 보면, 하등 볼품 없는 인간이라고 혀를 차지만 앞에서는 불똥 맞지 않으려 비위를 살살 맞춘다.
솔직하면 여러모로 곤란해지니까. 오직 적당히 무난한 하루를 쟁취하기 위하여, 나는 기꺼이 타인을 속인다. 진짜 속내가 엿보이지 않도록 속임을 쌓고 쌓는다. 세상에는 선의가 가득하고, 인간은 신뢰할 만하며, 나는 당신에게 우호적이다, 그런 눈빛을 장착한 채. 그러니 타인의 배신에 엉엉 울어버릴 수 있는 사람으로 비치는 것이다.
내가 남을 속이듯 남도 나를 속일 거라고 여기는 사람은 쉽게 배신 당하지 않는다. 배신은 상호 간에 신뢰와 정직을 가정해야 일어날 수 있다. 우리 사이에 배신이라니 너무 끈적끈적하지 않은가? 우리 사이에 속았다고 흘리는 눈물이라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