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되는 대로
내 브런치 구독자수는 4명이다. 여태 나보다 구독자수가 적은 계정은 못 봤다. 어떤 의미로는 쉽게 이루기 힘든 성과다. 어떻게 나는 아무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이렇게 놀라운(!?) 과업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 내 사주에 화개살이 있다더니 혹시 그것 때문은 아닐까?
역술인들 사이에서는 화개살이 도화살이나 홍염살과 같은 부류이지만 더 강력한 개성의 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화개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진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지는 것이고,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새로운 생각,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 출처 : 나무위키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진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 그래, 보이지 않는 힘이 사람들을 가까이 못 오도록 하는 게 분명하다. 나의 시공간은 어떤 차원의 문을 넘어야만 사람들에게 펼쳐지는 것으로써......흠, 관두자.
구독자를 살펴본다. 한 명은 친구고 나머지 세 '분'은 모르는 분들이다. 어느 경로로 이 누추한 곳까지 와서 친히 구독 버튼을 눌러주셨는지 모르지만, 그 소중한 분들 덕에 빗자루로 그나마 거미줄은 좀 걷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의 구독자분들은 라이킷을 누르는 등의 활동은 일체 안 하고 계신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을 텐데, 하나는 내 글이 호감을 살 만하지 않은 것이고, 하나는 그 분들이 애당초 구독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거나 브런치에서 아예 떠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 저 '4'라는 숫자조차 온전히 내 것이 아님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중이다. 물론 청중이 없기는 한데요.
그간 나는 이곳에 발행했던 한 줌의 글을 전부 닫아놓고 오래 버려두었다. 내 글이 볼썽 사납다고 여겼다. 브런치를 다시 해보기로 마음 먹은 후에도 부흥을 위한 참신한 전략 같은 것은 짜본 적이 없었다. 딱히 욕심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느 면을 보더라도, 그럴 만하니까 그런 현상이 일어난 셈이다. 최근 읽고 있는 <세이노의 가르침>에서 세이노 님은 때마침 내게 이러한 매서운 가르침을 선사하시었다.
하지만 어느 직업을 가졌든, 세상으로부터 더 많은 경제적 대가를 얻어 내려면 그 대가를 결정하는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p.182)
당신이 먼저 보여 주지 않는 한 국물도 없다. 대가를 더 많이 받는다면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이 세상은, 당신이 열심히 성실히 일하겠다는 그 각오를 덥석 먼저 믿어주는 세상이 전혀 아니다.(p.196)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세상은 후한 인심을 먼저 베푸는 법이 없다는 사실. 브런치의 생리라고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조악한 글에 라이킷을 눌러주는 분들께 버선발로 달려나가 프로필을 클릭해 보면 깜짝 놀란다. 초록색 뱃지를 단 특정 분야의 크리에이터 분들의 구독자수는 수 백 혹은 수 천 명에 이른다. 그들은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볼 때 그들의 글은 컨셉과 주제가 독창적이거나 일관되고, 정보나 재미나 감동을 제공하며 스토리텔링을 잘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한민국에 노래 잘 하는 사람이 지천에 널린 만큼이나, 세상이 원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이토록 수두룩 빽빽하다는 사실에 가슴이 웅장해지기까지 한다.
문득 예전에 사기업 다닐 때 사수가 한 말이 떠오른다. 자기 분야에서 인정 받는 평론가였던 그는, 한 때 문학소녀였던 내게 어느 날 이러한 혹독한 가르침을 선사하시었다.(가르침 역시 지천에 널려 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줄 알아? 똑같이 글을 써도 그게 돈으로 환산되느냐 아니냐 하는 점이야. 돈이 되는 글을 쓰는 사람이 프로야. 능력이 돈으로 증명되어야 프로라는 말이야."
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아마추어다. 브런치 세계에서는 프로인지 아닌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구독자수라 본다면. 나는 4에 가려진 사실상의 혼자로써,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진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되도 않는 화개살 타령이나 하면서, 아마추어의 특권인 ‘아무도 나에게 기대하는 바 없음’의 자유를 조금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누릴 따름이다.
맹랑한 바람 같지만 구독자수는 좀 늘어도 좋겠다. 인맥은 동원하기 싫다.(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고?) 하긴 인맥이라 할 만큼의 인간관계도 없다. 기껏 초대한다 해도 이곳에는 차린 것 없는 밥상 밖에 없어서 몹시 부끄럽겠다. 안 보여주면 안 당할 망신을, 지인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해가면서 당하고 싶지는 않다. SNS를 활용해 관심사가 비슷한 분들께 계정을 홍보하는 방안은? 그것도 안 된다. 올해 3월에 인스타를 깔끔하게 지워버렸으니까. 고 놈 참 말괄량이 같구나.
결론. 그냥 되는대로 하려고 한다. 골머리 쓰면서 글 쓰고 싶지 않다.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몰라도 내가 뭘 원하는지나 찬찬히 발견해가면 좋겠다. 세상이 대가를 주지 않아도 스스로 작은 성장을 기뻐하면 좋겠다. 글로써, 이 돈 안 되는 글로써 말이다. 없으면 없는 대로의 인생이 그럭저럭 펼쳐진다는 거, 그게 내 기본적인 마인드셋이다. 없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면, 어쩌면 ‘이대로도 좋다’고 해석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예, 이렇게 또 하루 정신 승리를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