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는 뭉게뭉게
멕시코에 가면 세노테(Cenote)라는 자연이 만들어 낸 우물이 있다. 우리나라 강원도에서도 볼 수 있는 석회암 동굴 같은 곳인데 이런 예쁜 동굴에 물이 찰랑찰랑 차올라 있는 곳이다. 특히 오랜 옛날 마야 문명이 자리를 잡고 있던 유카탄 반도에 가면 아름답기로 유명한 세노테가 있는데 오늘날에도 멕시코의 소문난 관광지 ‘칸쿤’에서 그리 멀지 않아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그런데 이 곳에는 아주 끔찍한 전설이 있다.
오랜 옛날 마야의 한 부족이 정글 한가운데에 있는 이 세노테를 보고, 이곳의 아름다움에서 나오는 그 신묘한 기운에 홀려 근처에 정착하고는 이곳을 치첸 이트사(Chichen Itza)라고 부른다. 그때까지는 주변에서 사냥이나 채집을 하던 부족이었는데 마을이 도시가 될 정도로 사람들도 많아지고 커지기 시작하자 채집으로는 한계가 왔고 드디어 농사를 지어보려고 하지만 여기서 큰 문제가 생긴다. 애초에 토양에 석회질이 많아서 질척하게 물이 땅에 고여 있지 않고 땅 깊숙한 곳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영양분이 많지 않아 작물들이 튼실한 열매를 맺기 힘든 지역적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열심히 잡초도 뽑고, 밭도 갈고 하면서 큰 밭을 일구어 놓아도 비가 한바탕 내리고 나면 밭이 다시 정글로 뒤덮여 농사짓기가 너무나 힘들기만 했다.
그래서 한가지 방법을 생각 해 낸 것이 바로 화전 농법이다. 비가 한바탕 오고 정글이 잔뜩 우거질 때를 기다렸다가 정글에 불을 질러서 벌초도 하고 땅에 영양분도 주는 아주 간편한 방식이었다. 화전 농사를 짓고 그대로 놔두면 다시 정글이 밭을 뒤덮어버리고, 다시 불을 질러 농사를 짓는 무한루프. 이런 자연 속에서 마야인들은 수천년간 꽤나 달달한 정글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늘이 찢어질 것처럼 많이 내리던 비가 언젠가부터 잘 오지 않게 되었다. 아마도 대략 8세기경 지구에 소 빙하기가(Little Ice Age) 찾아와 지구가 감기에 걸린 듯 자연현상들이 뒤죽박죽 되어버렸던 것 같다. 화전 농법의 핵심은 강렬한 남미의 햇빛과 충분한 비의 콜라보레이션인데 강한 햇살은 그대로였지만 비가 잘 내리지 않게 되면서 농사는 실패. 부족해져가는 식량에 시민들의 원성은 점점 커져 가기 시작했고, 도시를 다스리던 왕과 귀족들은 특단의 결정을 해야만 했다.
마야인들은 수천년 전에 이미 지금과 별 오차가 없는 달력을 만들기도 하고, 정확한 동서남북의 방향, 눈으로 관찰하기 너무나 힘든 목성, 화성, 금성의 존재 뿐만 아니라 이 행성들의 공전주기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천문학의 귀재였던 마야의 학자들은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비가 오지 않는 것이 자연의 변화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성난 시민들의 눈을 돌릴 만한 파격적인 이벤트를 해야만 했고, 선택했던 것은 잔혹하게도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었다.
세노테 근처에 365개의 계단이 있는 웅장한 피라미드를 지어 놓고 신관들은 잔혹한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들려오는 전설속에서는 신전 근처의 석조 건물에 어린 소녀들을 가두어 놓고 키워서 성인이 되는 날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높은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신관들이 처녀에게 수면제를 먹이고는 잠에 취한 처녀를 깊고 깊은 세노테에 던져 버리는 것이다. 담배는 이러한 종교의식 속에서 점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담뱃잎를 태울 때의 유달리 자욱하고 매캐한 연기는 종교의식을 더욱더 신비롭게 연출해 주었다. 또 담배뿐만 아니라 환각 작용이 있는 대마초나 코카인을 같이 태워서 의식을 치르는 동안 사람들을 현혹하기도 했다. 이런 의식을 통해 남미 사람들은 담배 연기에 귀신과 질병을 쫓는 아주 영험 한 기운이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누군가 병에 들면 큰 그릇에 담배가루를 넣어 집안에서 향초처럼 피우기도 했고, 귀족들은 식사 후에 두 세 시간씩 담배 타임을 갖기도 했다. 그때는 몰랐다. 계속 담배를 피우고 싶고 담배냄새를 맡고 싶은 그 기분. 많은 사람들이 담배에 중독되어 가고 있었고 이윽고 담배는 전세계를 유혹할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