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가 다시 묻는 질문들
겨울 공기에는 냄새가 있다. 차갑고 마른 공기 속에 진한 겨울 냄새가 난다. 모닥불의 냄새 같기도 하고 군고구마 냄새 같기도 한 공기 속에 비엔나커피 향이 나는 듯하다. 그렇게 겨울이면 비엔나커피가 생각난다.
나에게 '비엔나커피'는 스물두 살의 달콤함이다.
이십육 년 전 이야기이다.
스물두 살에 충무로에 있는 회사에 취직을 했다. 첫 직장이었다. 어린 나이에 월급이라는 생각보다 큰돈을 받았던 나는 같은 회사에 다녔던 한 살 많은 언니와 충무로에서 가까운 명동으로 쇼핑을 하러 갔다.
이제 막 신용카드도 만들었고, 돈의 무서움을 모르는 어린 나이에 월급은 너무 가볍게 쓰였다.
한창 꾸밀 나이였던 나는 옷가지와 신발을 샀다.
지금은 발이 아파서 신지도 못하는 높은 하이힐을 그땐 어떻게 하루 종일 신고 다녔을까?
그렇게 쇼핑을 마친 언니와 나는 허기진 배를 채우러 명동에 유명한 '명동교자'로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지금도 칼국수를 좋아하는데 그때도 좋아했었나 보다.
밥 다음은 커피라는 공식은 그때도 통했다.
언니와 나는 명동의 앤티크 하게 꾸며진 예쁜 커피숖에 앉았고, 언니는 '비엔나커피'를 먹자고 했다. 언니가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다고 했다.
스물두 살의 나는 커피맛을 몰랐다. 이십육 년 전만 해도 커피를 지금처럼 많이 먹진 않았고, 아직 커피맛을 알기엔 어린 나이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비엔나커피'같이 고급커피는 먹어보지 못했다.
커피를 주문하자 예쁜 앤틱 커피잔에 '비엔나커피'와 작은 비스킷 두 개가 나왔다.
커피 위에 뽀얗게 하얀 구름 같은 크림이 올려져 있었다.
언니가 크림을 먼저 먹어보라고 했다.
작은 티스푼으로 크림을 살짝 떠서 입어 넣는 순간 크림의 달콤함에 눈이 번쩍 뜨였다.
커피에 크림이 올려져 있는 건 처음 먹어봤다.
먹다 보면 크림이 점점 녹아서 커피와 섞인다. 커피색이 지금의 라테처럼 변할 때쯤 홀짝홀짝 마셔본다.
달콤한 크림 맛과, 커피의 쓴맛, 예쁜 잔을 들고 있는 스물두살의 나, 웃고 있는 내가 사진처럼 기억 속에 캡처되어 있다.
첫 술을 먹었던 것 이상의 경험이었다.
그 달콤함속에 커피의 쓴 맛이 나는 그것이 나의 스물두 살 같았다.
요즘은 비엔나커피가 메뉴에 잘 안 보인다.
오랜만에 먹고 싶었는데 비엔나커피 파는 곳을 검색하다 보니,
'아인슈페너'라고 판매하고 있었다.
'비엔나커피'는 영어표현이고, '아인슈페너'는 독일식 표현이라고 한다.
지금 나는 마흔여덟의 커피를 좋아하는 대한민국 아줌마가 되었다. 스물두 살 커피맛을 몰랐던 나는 커피맛을 까다롭게 느끼는 아줌마가 됐다. 동네에 어디 커피가 진하고 맛있는지 찾아다니곤 한다.
지금은 크림이 올라간 커피를 잘 먹지 않는다.
칼로리의 압박으로 '아인슈페너'같은 커피를 먹는 건 연 중 행사다.
지금의 나는 '비엔나커피'를 먹는 스물두 살의 나와 다르게 달콤함만을 찾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달콤한 커피대신 산미, 고소함, 흙맛, 과일향, 꽃향이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단순함 속에 각각 다른 씁쓸한 맛을 내는 것이 인생 같다.
인생의 맛이다.
동네에 작은 카페에서 '아인슈페너'를 한 모금하고 있는 지금 이 시간, 이십육 년 전 '비엔나커피'의 크림을 혀끝에 대에 보는 나의 스물두 살이 생각나 미소가 지어진다.
모닥불 냄새가 나는 듯한 겨울바람 속, 추억과 함께 달콤한 '아인슈페너'를 마신다.
스물두 살의 나의 '비엔나커피'처럼 오늘은 달콤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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