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가 다시 묻는 질문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을 표현할 때도 쓰이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비추어 말하는 말이기도 하다.
결혼 전이나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냥 하나의 관용구처럼 흘려 들었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리사랑이라는 말은 내 생활 속에서 확인된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의 필요를 본능적으로 알고 먹이고씻기고 재우며 키웠다.
아프기라도 하면 밤새 숨소리 하나에 반응하며 끙끙 앓는 아이를 간호하고, 추운 겨울 손이라도 시릴 새라 아이들은 괜찮다 해도 장갑을 쥐어 보내고, 배고플까 목마를까 보살피며 아이들을 키운다.
누가 알려 준 것도 아닌데, 엄마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본능적으로 그렇게 된다.
하지만 부모님에 대한 마음은 다른 것 같다.
마음은 분명 있지만, 전화 한 통 할까? 하는 순간에도 피곤함을 핑계로 뒤로 미루고, 한번 찾아가 봐야지 하다가도 추위를 핑계로 다음으로 미룬다.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부모님은 뒤로 밀려난다.
그래서 엄마가 가끔 서운해하실 때가 있다. 나에게는 말하지 않으시지만 느껴진다. 그 서운함은 화가 나서가 아니라 기다림에서 오는 감정이라는 걸 알 것 같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항상 붙어 있는 아이들이 오히려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이젠 성인이 되고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을 나도 기다린다.
기다림이라는 시간은 쉽지 않은 시간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의 시간이 보인다. 내가 아팠을 때 밤새 간호했을 엄마의 시간, 나를 키우며 걱정했을 수많은 시간들, 자식에게 비출 수 없어서 삼 겼던 수많은 감정들, 딸이 딸을 낳고 키우는 것을 보는 시간들, 딸의 결혼생황을 보는 시간들... 그리고 자식과 손주들을 기다리는 시간들...
엄마가 원하는 것은 거창한 효도가 아니라, '잘 지내시냐'는 안부를 묻는 짧은 통화였을 텐데 나는 그 사소한 마음조차 자주 놓쳤다
내리사랑은 본능처럼 아래로 흐르는 사랑이지만, 치사랑은 의식하지 않으면 닿지 않는다. 의식해서 챙기지 않으면 지나치게 된다. 그래서 부모로 향하는 치사랑은 항상 늦고, 늘 부족하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되돌려 주는 일이 더 어렵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이 더 그렇다.
자식은 부모에게 받는 사랑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고, 되돌려 주는 사랑은 항상 늦는다.
오늘 오후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계시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 긴 시간을 채우는 것이 힘드셨으리라.. 또 춥다는 핑계로 찾아가진 못했지만 전화를 하고 싶었다.
큰 폭포 같은 사랑을 받았지만, 전화 한 통화라는 작은 사랑으로라도 되돌려 드려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그 자리에 그대로 계셨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 안 되는 사람들이 네 눈에 보이는 것은 너의 행동도 조심하라고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거다라는 조언을 해주시고,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 하시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깔깔깔 웃기도 했다.
별 특별한 이야기를 한 건 아니지만 전화를 끊고 깨달았다. 나의 편안해진 마음을 보고 난 또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은 전화통화라는 작은 사랑이지만 치사랑을 엄마에게 보내야겠다 다짐했지만,
난 또 사랑을 받았다.
사진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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