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가 다시 묻는 질문들
외로움은 외로움을 반기는 사람에겐 오지 않는다.
독박육아로 아이 둘을 키우는 동안에 '외로움을 느껴봤으면 좋겠어~~'하며 투정을 부리곤 했다. 투정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아이들을 사랑하고 잘 키우고 싶은 마음 저편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도 분명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아이들과 보내야 했다. 유치원이며 초등학교에 들어갔지만 틈틈이 알바를 하기도 했고 뒤돌아 서면 아이들이 올 시간이 됐다. 기관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오히려 더 밀도 있게 놀아달라고 하기도 한다.
한참 날씨가 좋은 봄, 가을 이면 유치원에서 하원 후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2-3시간을 노는 아이와 함께 있다가 집엔 저녁에야 돌아왔고, 그 뒤로 씻기고 밥을 해 먹이고 몸이 두세 개라도 모자라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또 아이를 키우는 것은 항상 무슨 일의 연속이기도 하다.
"외로웠으면 좋겠다~~~~"
"아무 일 없이 일주일만 지냈으면 좋겠다~~~"
그러나 외로움은 자기를 반기는 사람에겐 오지 않는다.
난 외로움을 잘 모르는 사람인가 보다 하며 그렇게 살았다. 너무 정신없고 바빠서 외로울 틈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둔한 나는 그렇게 30대를 지냈다.
내가 43세에 아버지가 심장문제로 수술 후 패혈증으로 돌아가셨다.
평생을 직장에서 성실히 치열하게 살아온 아버지는 퇴직한 만 70세에 돌아가셨다. 평생 일만 하셨는데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회한으로 그해 겨울을 보냈다.
반찬 투정을 하면 '아빠는 칡 캐 먹으며 살았다' 하며 호통을 치시고 실수를 해도 호통을 치셔서 아버지와 다정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그렇게 가장으로서 경제적으로 가정을 책임지시는 일에는 최선을 다 하셨지만 아버지로서의 잔정을 주시진 못했다.
그 부분이 아버지도 딸들도 사무치게 그리웠으리라...
갑작스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정이 딸은 그리웠고, 풀지 못한 숙제 같았다.
아버지의 20살 때의 이야기를 들을 걸, 엄마를 만났을 때 얘기를 들을 걸, 직장생활 얘기를 들어 들일 걸...
아버지의 이야기를 못 들은 것이 가장 후회되었다.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고독이 찾아왔다.
처음에 고독이 왔을 때는 고독인 줄 몰랐다. 우울인 줄 알고 울었고 그렇게 울고 난 울음 뒤에 그것이 고독인 것을 알게 되었다.
난 외로움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고독? 고독이 뭔데? 외로움이 커진건가 하는 철없던 사람이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독 속에서 가족, 삶, 죽음, 자연, 종교, 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가본 고독이라는 섬은 외로운 공간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 나를 돌보고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이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도 혼자 고독의 섬에 갈 수 있게 되었고 그곳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를 돌아보며 글쓰기가 시작되었고 그 글쓰기가 지금 여기까지 이끌었다.
30대 중반에 지인과의 만남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했지만 그때만 해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와는 다른 사람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글쓰기를 배운 적도 없고, 흔한 글쓰기 모임도 가본 적이 없고, 내 글을 평가받아 본 적도 없다.
너무 부족한 글이지만 글을 통해 나를 채우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지금은 그것으로 족하다.
2026년에는 좀 더 성장하는 글쓰기가 되길 기대한다.
내 글이 살아있는 글이 되길 소망한다.
영원
외로움을 잘 모르던 내게
외로움이 다가왔다.
허전함으로 온 외로움은
어느새 고독이 되었다.
큰 구름 같은 고독은
나를 감싸 안아서
아무도 없는 어느 섬으로
나를 데려갔다.
고독이 낯설게 느껴져
눈물이 낫지만
거둬들인 눈물 뒤에
내가 있었다.
눈을 떠서 나를 보고
나를 마주 보았다.
나의 영혼을 보고
나를 안아주었다.
이제 사람들과 살다가
지칠 때
내가 그 섬에 간다.
그곳에서 나를 돌본다.
사진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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