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스쳐가는 바람처럼

너와 내가 다시 묻는 질문들

by 영원


처음 '아줌마'라고 불린 것은 30대 초반이었다.


4-5살 된 첫째 아이의 손을 잡고 시장을 지나갈 때 야채가게 사장님이(나도 아저씨라고 부르고 싶다.) '아줌마'라고 불렀다. 더 기분 나쁜 것은 내가 그 부름에 고개를 돌려 봤다는 것이다. 쳐다봤으면 진 거다. 그때의 당혹감이 커서 왜 날 불렀는지 그 뒤에 뭐라고 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 장면이 사진처럼 저장되어 있다.



30대 초반이라기도 했고 아이 없이 혼자 다니면 결혼한 것도 몰라 봤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훅 들어온 '아줌마!'는 내 위치를 정해 주는 말 같아서 싫었다.

혼자 다닐 때는 '아줌마'소리를 들은 적이 없고, 아이랑 다닐 때면 가끔 그렇게 불리는 것을 보면 단순히 '나이'로 나뉘는 호칭은 아니다.

아이랑 있을 때의 나의 위치, 역할에 따라 불리는 호칭이기도 하다.





위녕이 말했다.

"그건 왜냐면... 결혼한 여자의 얼굴에는 빛이 없거든."


내 친구 엄마들의 얼굴에는 늘 '세상에 새로운 게 뭐가 있겠어. 나쁜 일이나 없으면 됐지.' 하는 어떤 체념 같은 것이 딱딱하게 어려있었다.


"그거는... 그거는 위녕, 결혼을 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얼마나 자신으로 살아가는가의 문제야. 그러니까... 결혼을 하고 안 하고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얼마나 지키고 사랑하고 존중하는가의 문제라니까...."


"알아. 그런데 그게 없더라니까.. 거의 본 적이 없어.

그럴 때 사람들은 생각하는 거 아닐까, 저 여자는 아줌마구나."


- 즐거운 우리집(공지영) -





30대 중반에 읽은 '즐거운 우리집(공지영)'의 일부분이다.

공지영 님의 '아줌마'에 대한 정의에 곰곰이 머물렀던 적이 있다. 나도 시장 갈 때 추레하게 입고 멍 때리고 다녔는데 그것이 어떤 '체념'같아 보였을까 싶어서 눈에 힘주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지독히도 '아줌마'에 대한 반감이 었었나 보다. 아마도 조금 일찍 결혼을 한 내가 아줌마까지 되긴 싫었던 것 같다. 공지영님의 소설까지 곱씹으며 '아줌마'가 되지 말아야지 하는 신념이 있었다. 지금은 40대 후반이고 누가 '아줌마'라고 불러도 신경도 안 쓰지만 그때 그랬다.



20년 전만 해도 '아줌마'라고 부르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요즘엔 40대 후반이지만 '아줌마'라고 잘 불리지 않는다. 호칭을 생략하는 분위기다.

'아줌마'라는 호칭은 여성을 부르는 말이라기보다는 중성적인 느낌이고, 사회적 역할을 지정하는 말 같이 느껴진다. 내 이름은 사라지고 아내, 엄마로서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억척스러움으로 느껴진다.



나이에 따라 사회적 호칭이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줌마라는 호칭을 이야기했지만 10년 후면 할머니라고 불릴지 모른다. 지금은 '아줌마'라는 호칭이 놀랍거나 기분이 나쁘지도 않다. 그냥 흘려보낸다. 아줌마라는 단어뿐 아니라 상대방의 말 한마디를 꼭 집어서 마음에 담았던 것들을 흘려보내고 싶다. 상대의 말이나 행동을 이해하려 애쓰지 않고, 혼자 해석하지 않고 그렇게 나이 들고 싶다.



30대의 나는 귀엽게 '아줌마'를 거부했지만, 40대의 나는 그 말을 흘려보낸다.

30대의 나는 '아줌마'를 흘려보내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른 단어를 흘려보내지 못하는 거 아닌가? 생각한다. 특정 사람이 걸리는 부분도 있고, 어떤 상황이 유독 걸리는 부분도 있다.

조금 은 더 느긋해진 면은 있지만, 아직도 조바심이 나는 상황이 있다.



아줌마라는 말도, 다른 사람의 말투도, 사소한 말 한마디도 잠시 스쳐가는 바람처럼 흘려보내고 싶다.

내년에는 좀 더 둥글어 지길... 더 잘 흘려보내길 소망한다.



60이 되고, 70이 되면 더 잘 흘려보낼 수 있게 되길... 그러면서 더 평온해 지길 기대한다.






* 2025년 한 해 작가님들의 글의 보는 것은 기쁨과 경탄 이였습니다. 내년에도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사진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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