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선택 앞에서..

너와 내가 다시 묻는 질문들

by 영원


평일 오후 카톡 알림이 울렸다.


따듯한 연말 보내라는 말과 함께, 유방암 수술 후 수술이 잘 되었고 암세포도 없어졌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큰 아이 초등학교 1학년때 학부모로 만난 지인이다.


'아이 친구의 엄마'라는 관계는 오래가기도, 서로의 마음을 나누기도 힘든 관계이다. 심지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라서 아이들끼리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계가 이어지기 어려울 수 있었다. 그러나 13년을 이어온 우리는 힘든 결혼생활과 아이들 초, 중, 고를 함께 한 동지애 같은 것이 있다.

그런 언니가 올해 유방암이라는 잔인한 소식을 전했고, 언니 앞에서 덤덤히 잘 될 거라는 얘기 밖에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지인은 6번의 항암 후 얼마 전 수술을 했다. 회복 중에 있는 시간에 방해가 될까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먼저 연락을 준 것이었다.


수술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항암을 12번을 더 해야 한다고 말하며 앞으로 있을 치료의 시간을 마주하는 것이 힘겨워 보였다. 앞으로 있을 항암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서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고 말하며 의사가 건강보험 적용되는 항암제와 상대적으로 비싼 항암제를 제시하며 선택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 순간 한 번에 몇 백만 원 하는 항암제를 고르는 일이 쉽지 않았고, 남편에게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고 한다.



그분의 가정경제사정을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 아들 둘을 부족하지 않게 키우는 모습을 보며 가정경제가 힘든 상황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본인의 생명이 걸린 결정 앞에서 돈의 무게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을 보며 '생명이 달린 일인데 왜 그런 걱정을 하냐'라고 했지만 과연 '나는 그 순간에 고민하지 않고 비싼 항암제를 결정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들은 자녀에게 돈을 쓰는 일 앞에 계산기를 두지 않는다.

학원비, 운동화, 경험에 쓰는 돈 앞에 망설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돈의 방향이 '나'가 되는 순간 손이 멈춘다.


지인이 항암제를 고르는 순간에도 그랬다.


조금 더 비싸고, 조금 더 효과가 좋다는 약 앞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게 되고 남편의 얼굴을 떠올리게 됐다.

생명이 달린 선택 앞에서도 가족의 지갑을 먼저 헤아리고 있었다.



비싼 항암제를 고르는 일을 선뜻하지 못하는 건, 내가 나 자신을 가족의 중요한 일부라고 생각하기보단 가족을 위해 감내해야 할 존재로 오래 살아왔기 때문일지 모른다.

나도 조금 아프건 병원 진료를 다음으로 미루고, 치과예약도 다음으로 미룬다. 새 옷이 눈에 들어올 때도 다음 계절로 미룬다. 좋아하는 해물이 생각날 때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기로 저녁상을 차린다.



일상의 사소한 선택 앞에서 '나'를 미뤘듯이 생명이 달린 일에도 선뜻 나를 위한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계산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학원비를 결제할 때 꺼내지 않던 계산기를 나를 살리는 선택 앞에서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꺼내든다. 어쩌면 그 멈춤은 망설임이 아니라 오랫동안 나를 뒤로 두고 살아온 익숙함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익숙해서 멈추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채..



나를 살리는 선택 앞에서 조차 우리는 잠시 멈추게 된다.






사진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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