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카포트 와 함께
연휴 마지막날 혼자 카페에 앉았다.
시댁에서는 연휴 전주 주말에 전화를 하셔서 이번에는 친정에 가라고 하셨다. 항상 명절이면 시댁에 왔으니 친정에 가서 엄마랑 시간을 보내라는 이유에서였다.
며느리라는 자리는 그 말에 선뜻 편하게 "네~"라고 말하지 못하는 자리이다.
그러나 명절 아침부터 손주들과 딸을 기다려 오후쯤 얼굴을 보는 엄마를 생각하면 그럼 이번엔 그러리라고 말하고 설 아침에 아이들을 깨워 친정에 갔다 왔다.
전을 부치지도.. 손님을 맞이하지도 않았지만 설 당일 친정에 가서 떡국을 먹고, 영종도의 유명한 관광지도 둘러보고,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하는 일이 쉬운 건 아니었다. 명절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도로에는 차들이 쏟아져 나왔고, 아메리카노가 다른 곳의 두 배 가격인 대형카페는 자리가 없어서 한참을 서성였다.
그런 상황을 반기지 않는 나지만 오래간만에 딸들이 다 모여 음식을 먹고 나들이를 가고 하는 상황을 좋아하시는 엄마를 위해, 다른 가족을 위해 기꺼이 열심히 자리를 찾고 음료 8잔을 들고 2층을 오르는 묘기도 부렸다. 어젯밤에 자려고 누웠을 땐 '명절이라는 오늘 하루를 치러냈구나..' 하는 마음에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연휴 마지막날 3시간 정도 조용히 보내고 싶어서 카페에 왔다.
아메리카노 한잔과 원두를 샀다. 모카포트용으로 갈아 달라고 하고 받아 들었다. 벌써 어떤 맛일까? 너무 궁금하다. 집에 가서 모카포트에 커피를 내려 먹을 생각에 설레기도 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인스턴트커피를 급하게 뜯어서 뜨거운 물을 넣은 커피를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커피를 먹는다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며 그렇게 커피를 마셨다.
바리스타 자격증 학원을 다닐 때 모카포트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작은 것으로 하나 샀었다.
인스턴트커피보다는 훨씬 손이 가는 커피를 만드는 시간이 무언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 같아서 좋았다.
모카포트는 나에게 커피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의미 이기도 하다.
작년 이탈리아에 갔을 때 동네 슈퍼에서 모카포트를 발견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동네 슈퍼에서 팔 정도로 너무나도 익숙하고 흔한 물건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사는 것보다 반값 정도의 가격에 그것을 구매하고 참 행복한 생각이 들었었다.
난 명품엔 별 관심이 없다.(물질이 셀 수 없이 많으면 하나쯤 사고 싶긴 하다 ㅎㅎ) 현지에서 명품을 사면 좀 저렴하게 살 수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나한테는 그 돈을 내고 살만한 의미는 없다.
이탈리아 슈퍼에서 모카포트를 발견하고 명품보다 더 설레었던 것 같다.
그것을 손에 쥐고 호텔에 왔고, 한국까지 가져와 지금은 주방 한편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일부터는 주방에 거실에 아침에 커피 향이 퍼질 것을 생각하면 따듯하게 느껴진다.
단순히 커피 한잔 내려 먹는 행동이지만, 그것은 나를 대접하고 돌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침을 깨우는 향이다. 아침의 첫 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의식이기도 하다.
글을 쓸 생각으로 카페에 간 것은 아니었다.
혼자 앉아 원두커피를 보고 모카포트를 떠올리고 이탈리아 여행을 떠올리다 보니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원두커피 한 봉지를 품에 안고 집으로 가는 작은 행동이 지난 일주일의 고단함을 쉬게 한다.
연휴 마지막날 커피 한잔과 원두 한 봉지 모카포트가 있으니 딸의 자리, 엄마의 자리, 며느리의 자리에서 나의 자리가 생겼다.
사진출처(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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