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내 안에 '정리의 DNA'가 꿈틀 된다. 겨울 내 추위에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다 따듯한 기운이 느껴지면 '정리의 DNA'가 기지개를 켠다.
소파에 앉아 집을 쭉 둘러본다. 색 바랜 벽지,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잡동사니들, 체리색 몰딩까지..... 최악이다.. 그것들로부터 눈을 거두려 핸드폰을 보지만, 핸드폰은 친절하게도 나의 관심사에 맞는 피드를 보여준다. 인테리어를 몇 번 봤더니 인테리어 천지다... 더 심난해서 핸드폰을 끄고 베란다를 본다.
코로나 때 집에 있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동백꽃 화분을 샀다. 겨울에 방끗 웃으며 빠~~ 알간 꽃을 피우는 동백꽃이 너무 예뻐서 베란다에 나가 추운지도 모르고 바라보곤 했다. 그렇게 3년 정도 꽃을 피우더니 재작년엔 꽃을 안 피웠다. 올해는 잎이 마르더니 가지까지 말라버렸다. 내가 관리를 못해서 죽어 버렸지만, 잎이 다 떨어진 가지를 보며 '저 화분 정리해야 되는데... 하며 겨울을 보냈었다.'
마음속의 '정리의 DNA"가 말을 걸었다.
'오늘이야~Go!'
소파에서 벌써 일어나 돗자리를 찾아 베란다에 깔았다. 막상 동백꽃 화분을 돗자리 위에 뉘이니 사랑은 변한다더니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하는 신파극이 생각났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눈으로 꽃을 봐라 봤었는데 지금은 머리채를 잡듯 가녀린 가지를 잡고 뽑아내고 있다.
동백꽃을 처리하고 나의 눈빛이 변했다. 이왕 정리하는 거 다른 화분도? 두 번째 화분을 물색했다. 동백꽃 옆에 있던 동백꽃이랑 같이 샀던 화분을 바라본다. 잎이 많이 마르고 썩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저렇게 두면 곧 저 화분도 동백꽃처럼 되리라.. 하는 핑계를 대며 돗자리 위로 데려왔다. 머리채를 잡듯 잡아 뺀다. 흙과 뿌리가 엉켜 흙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삽으로 푹푹 흙을 찔러본다.
갑자기 '살인사건현장'같은 생각이 든다. 두 번째 화분은 완전히 죽은 화분은 아니었다. 곧 인테리어도 해야 할 것 같고 봄이 되어서 베란다도 정리해야 한다는 핑계로 그렇게 두 번째 화분을 처리했다.
세 번째 화분은 아들이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받아온 화분이다. 아래로 퍼지며 자라는 식물인데 몇 년 사이 많이 자라서 화분이 작아 보이고 높은 곳에 올려두면 아래로 자라는 화분인데 우리 집에 높은 곳에 올려 둘 때가 없어서 바닥에 뒀더니 바닥을 휩쓸고 다녀서 평소에 '저 화분을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녀석이다.
이 화분이야 말로 머리채 잡는 기분이다. 미안하다. 속으로 생각하지만 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무표정하다. 무표정해야 빨리 감정 없이 처리할 수 있어서였다. 이파리가 너무 퍼져서 가위로 자른다. 싹둑싹둑 자르면서도 무표정을 유지한다. 누가 볼세라 이파리는 종량제 봉투로 넣어버리고 흙은 돗자리에 쏟는다.
잠시 생각한다. 고무나무 화분 2개가 남았다. 화분정리를 해야 한다 하면서 2년을 미뤘다. 이왕 시작한 김에 그냥 다 없애 버리자라는 생각과 고무나무는 아직 쌩쌩히 살아 있는데? 중고플랫폼에 올려도 누가 가져가지 않을 텐데.. 하는 고민 끝에 이왕 시작한 김에 깨끗하게 정리하자는 쪽으로 결론을 낸다.
두 개의 화분은 쉽지 않다. 고무나무라 잎도 크고 줄기도 단단하다. 더 힘을 주어 줄기를 자르고 뿌리를 자른다. 역시 무표정이다. 빨리 해치우기 위해 손은 빠르다.
화분 5개를 정리했다. 화분의 잔해인 흙이 난자하게 흩어져있다. 흙을 쓸어 담는다. 한 때 나의 기쁨이기도 했는데 사랑이 변했다. 긴 세월에 화분은 나이 들었다.
자연을 사랑한다더니 화분 5개를 해치웠다. 나름 이유가 있었지만 미안하다. 베란다를 벗어나 주방에서 설거지를 시작한다. 한낮의 살인현장 같은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주방이 깨끗해 지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다시 소파에 앉아 베란다를 바라본다. 워낙 지저분하게 화분들이 자리하고 있었던 터라 베란다가 깔끔해지니 집 안까지 밝아지는 느낌이다. '그래! 잘한 거야~'하며 다시 다독여 본다.
아! 사진을 찍어둘걸 그랬나?
흙무덤이라도 찍어둘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완전범죄에 사진 찍으면 안 되지..ㅎ
혼자 모노드라마를 찍고 있을 때 아들이 들어왔다.
"어머니~ 어우 저 마지막 교시가 체육이라서 언능 샤워할게요~~"
샵으로 푹푹 흙을 찌를 때의 나의 마음과
줄기를 가위로 자를 때의 무표정
완전범죄를 꿈꾸는 나의 생각이
아들의 하교로 깨지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온 집안에 나만 맡을 수 있는 흙냄새가 진동한다.
사진출처(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