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발의 중력과 모니터의 발광(發光)

육중한 슬라이딩 도어가 닫히는 소리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육성이다. 9인승 카니발, 그 거대한 철제 박스는 내 삶의 가장 거대한 중력 가속도가 작용하는 공간이다. 뒷좌석에 앉은 두 딸의 웃음과 울음, 그리고 끝없이 쏟아지는 질문들은 공기 저항도 없이 내 고막을 파고든다.



핸들을 잡은 내 어깨 위로 가족이라는 이름의 '질량'이 얹힌다.




도로 위에서 나는 아빠라는 이름의 궤도를 이탈할 수 없는 위성이다. 카니발의 커다란 덩치는 든든한 요새이자, 동시에 나를 세상의 속도에 맞춰 끊임없이 공전하게 만드는 관성의 굴레다. 아이들의 간식을 챙기고, 안전벨트를 확인하고, 백미러로 끊임없이 뒤를 살피는 행위들. 그 속에서 '나'라는 개인의 입자는 카니발의 육중한 무게 아래 납작하게 눌려간다.




밤이 깊어 카니발의 엔진이 식고 나면, 나는 비로소 낮은 채도의 거실을 지나 책상 앞에 앉는다. 27인치 모니터의 전원을 켜는 순간, 어둠을 가르고 뿜어져 나오는 그 서늘한 발광(發光). 그것은 낮 동안 카니발의 중력에 짓눌렸던 내 영혼이 쏘아 올리는 유일한 구조 신호다.




낮의 빛이 만물을 비추어 나를 타인의 시선 속에 가두는 빛이라면, 밤의 모니터가 내뿜는 빛은 오직 나만의 영토를 비추는 '심해어의 초롱'과 같다.



키보드 위를 달리는 손가락 끝에서 문장이 피어날 때, 나는 비로소 카니발의 중력권에서 벗어나 무중력의 상태로 진입한다. 블로그라는 작은 영토 위에서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운전기사도, 보호자도 아닌, 오직 언어의 조각가일 뿐이다.




세상은 이것을 '취미'라 부르지만, 나는 이것을 '생존을 위한 발광'이라 정의한다.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행성은 결국 거대한 항성의 중력에 잡아먹혀 소멸하고 만다. 가장이라는 항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역설적으로 나는 이 밤의 모니터 앞에서 스스로 빛나는 별이 되어야만 한다.




카니발의 중력이 나를 땅에 발붙이게 하는 '책임의 힘'이라면, 모니터의 발광은 나를 허공으로 띄워 올리는 '자유의 힘'이다. 이 두 힘의 팽팽한 길항 작용이 있기에, 나는 내일 아침 다시 기꺼이 그 무거운 슬라이딩 도어를 열 수 있는 것이다.




글자 몇 자를 더 적어 내려가다 문득 뒤를 돌아본다. 열린 문틈 사이로 곤히 잠든 아이들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모니터의 빛을 줄여야 할 시간이다.




발광을 멈춘 모니터에 내 얼굴이 희미하게 비친다. 낮의 중력을 견뎌낸 흔적이 눈가에 자글자글하다. 나는 조용히 노트북을 덮으며, 내 안의 영토에 작은 말뚝 하나를 더 박는다. 오늘 밤, 나는 충분히 나로서 빛났고, 그 빛으로 내일의 중력을 버텨낼 에너지를 충전했다.




잠자리에 누워 생각한다. 내일 아침 카니발의 시동을 걸 때, 나는 오늘 밤 내가 써 내려간 문장들을 연료 삼아 다시 힘차게 엑셀을 밟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