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우측 상단에 표시된 실시간 방문자 수는 잔인하리만큼 정직하다.
정성껏 눌러 담은 문장들이 '검색 최적화'라는 거대한 알고리즘의 파도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때, 나는 이 영토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구글임을 깨닫는다. 블로그를 운영한다는 것은, 결국 '나의 진심'과 '세상의 검색어'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과정이다.
내가 오늘 쏟아낸 고단함과 삶의 비애는 구글에게 그저 '데이터'일 뿐이다. 알고리즘은 내 눈물의 무게를 측정하지 않는다. 그저 클릭률이 높은 키워드와 체류 시간을 늘려줄 자극적인 정보만을 수집할 뿐이다. 30대 가장의 애환을 담은 고백보다 '카니발 싸게 사는 법'이나 '아이와 가기 좋은 카페'라는 단어에 구글의 로봇은 더 격렬하게 반응한다.
가끔은 비참해진다. 내 내면을 전시하는 행위가 결국 광고 수익 몇 십 원을 위한 '감정의 소매업'으로 전락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글과 내가 쓰고 싶은 글 사이의 간극은, 마치 퇴근길 꽉 막힌 올림픽대로의 정체만큼이나 답답하다.
나는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기 위해 제목에 낚시성 단어를 배치하고, 가독성을 위해 문장을 잘게 쪼갠다. 그것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효율의 극대화'이지만, 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진정성의 거세'에 가깝다. 구글은 내 슬픔을 검색하지 않기에, 나는 내 슬픔에 '정보'라는 옷을 입혀 위장시킨다.
하지만 그 찌질한 줄타기 끝에 도달하는 지점이 있다. SEO(검색 엔진 최적화)라는 차가운 수식어를 뚫고, 누군가 남긴 "저도 오늘 참 힘들었는데, 이 글 보고 위로받고 가요"라는 댓글 한 줄. 그것은 알고리즘이 계산해낼 수 없는 '인간의 온기'다.
결국 내가 블로그라는 영토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상위 노출의 쾌감 때문이 아니다. 구글이 검색하지 못하는 내 눈물을, 이름 모를 누군가는 문장 행간 사이에서 읽어내기 때문이다. 기계는 키워드를 읽지만, 사람은 마음을 읽는다.
그 당연한 진리를 확인하는 순간, 나의 줄타기는 더 이상 고통이 아닌 '소통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가 된다.
오늘도 나는 구글이 좋아할 법한 키워드 몇 개를 본문에 섞어 넣는다. 하지만 그 문단 끝에는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는 진심의 표식을 숨겨둔다.
노트북을 덮고 아이들이 잠든 방으로 들어간다. 구글은 검색할 수 없는, 오직 나만이 온전하게 소유한 이 밤의 고요함. 내일이면 또다시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어 키보드를 두드리겠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내가 내 삶의 유일한 검색어다.
부엌 정수기에서 물 한 잔을 받아 마신다. 차가운 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감각은 어떤 알고리즘도 복제할 수 없는 실존의 증거다. 나는 내일도 검색되지 않을 진심을 쓰기 위해, 기꺼이 구글의 바다로 항해를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