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굽은 등 위로 쌓이는 0.01달러의 무게

거실 불이 꺼진 뒤, 안방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스마트폰 불빛을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을 재우다 함께 잠든 줄 알았던 아내는, 어둠 속에서 수십 번 화면을 두드리고 있었다. '앱테크'라 불리는 디지털 폐지 줍기. 10분을 매달려 퀴즈를 풀고 광고를 봐야 겨우 적립되는 포인트는 고작 몇 십 원, 환율로 치면 0.01달러 남짓한 무게다.




그 찰나의 빛에 비친 아내의 등은 낮게 굽어 있었다. 낮에는 아이들의 우주를 떠받치느라 팽팽하게 긴장했던 그 등이, 밤이 되면 단돈 몇 원의 가치를 쫓느라 처연하게 휘어진다. 가장으로서 내 자존심이 욱신거리는 지점은 바로 거기다.



내가 벌어오는 월급이 아내의 그 굽은 허리를 꼿꼿하게 펴주지 못한다는 실존적 자괴감.




우리는 흔히 가정을 '안식처'라 부르지만, 실상 30대 부부에게 가정은 가장 치열한 '손익분기점의 전쟁터'다. 마트 전단지의 할인 품목을 체크하고, 배달비를 아끼려 포장 주문을 하러 나가는 번거로움. 그 수고로움의 총합은 경제학적으로 보면 '기회비용의 낭비'일지 모른다. 그 시간에 잠을 자거나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생산적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아내에게 그 0.01달러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가족의 내일을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게 지켜내고 싶다는 '모성적 헤징(Hedging)'이다. 내가 모니터 앞에서 블로그의 조회수에 일희일비하며 '자아'를 찾을 때, 아내는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우리 가족의 '실존'을 방어하고 있었던 셈이다.




미안함은 때로 '복수'의 감정으로 치환된다. 나를 힘들게 하는 직장 상사나 팍팍한 현실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아내의 굽은 등에 새겨진 가난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싶다는 처절한 복수심. 그래서 나는 밤마다 더 악착같이 모니터 불빛에 눈을 맞춘다. 내 블로그에 쌓이는 광고 수익과 아내의 앱테크 포인트가 합쳐져, 언젠가는 이 '소수점의 삶'을 탈출할 수 있기를 바라며 말이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발광(發光)'하고 있다. 아내는 스마트폰 액정으로, 나는 노트북 모니터로. 이 서늘한 디지털의 빛들은 역설적으로 우리 가족을 지탱하는 가장 뜨거운 땔감이 된다. 0.01달러의 무게는 가볍지만, 그것을 쌓아 올리는 마음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새벽녘, 아내의 손에서 스마트폰이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마침내 잠든 아내의 등 위로 얇은 이불을 덮어준다. 굽어 있던 등이 이불 아래서 조금은 편안해 보인다. 내일 아침이면 아내는 다시 카니발 뒷좌석에 아이들을 태우고, 나는 다시 세상의 중력을 견디러 나갈 것이다. 그리고 밤이 오면 우리는 또다시 각자의 빛을 켜고 소수점의 숫자를 채워 나갈 것이다.



내일은 퇴근길에 아내가 좋아하는 제철 과일이라도 한 봉지 사야겠다. 아내의 0.01달러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그 달콤한 과육의 맛으로 증명해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구글은 내 눈물을 검색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