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유니버스 또는 다중우주(multiverse)라는 개념은 어벤져스로 대표되는 마블 영화뿐만 아니라, 여러 영화와 작품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물리적인 현실을 넘어 수많은 가능성과 현실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발상에 기반을 둔다. 그러나 이 개념은 단순히 허구적 상상에 그치지 않고, 우리 심리적 경험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Cognition)란,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정보에 반응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결정을 내리는 모든 정신적 과정을 의미한다. 우리의 생각, 지각, 기억, 판단, 그리고 문제 해결 등은 인지의 일부이며, 이는 세상을 해석하고 행동을 계획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단순히 우리가 ‘무엇을 보고 경험하는가’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같은 현실에서도 각기 다른 세상을 살아가게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물리적 이동 없이도 전혀 다른 세상으로 '이동'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출근길에 보이는 똑같은 풍경조차 내가 사랑을 시작했을 때와 이별했을 때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사랑에 빠졌을 때는 화창한 날씨와 화려한 가로수의 모습이 눈부시게 느껴지지만, 이별의 순간에는 같은 풍경이 회색빛으로 물들고, 거리의 소음조차 고독하게 들린다. 또, 나의 자신감이 무너져 있을 때는 경제 상황이 나에게 좌절과 고통으로 다가오지만, 자신감에 차 있는 사람에게는 같은 상황이 오히려 도전과 성장의 기회로 보이기도 한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마음이다. 내가 어떤 생각과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내가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세상은 그 즉시 달라진다. 물리적 세계는 그대로지만, 우리는 각자 다른 '심리적 우주'에 머물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마치 안경의 색깔에 따라 풍경이 달리 보이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렌즈 역할을 한다. 이 렌즈가 긍정적이고 희망찬 색깔을 지녔다면, 세상은 더 밝고 따뜻하게 보일 것이며, 반대로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렌즈를 통해 본다면 모든 것이 어둡고 무겁게 느껴질 것이다.
결국, 우리가 가진 믿음과 마음가짐은 세상을 받아들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객관적인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 세상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것만으로 내가 겪는 세상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심리적으로 무한한 '멀티유니버스'를 경험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각자의 마음에 따라 세상은 무한히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되며,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열어 준다.
심리학의 인지적 관점에서, 우리의 생각과 감정은 우리를 다양한 심리적 현실로 인도한다. 그 심리적 현실이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의 렌즈를 인식하고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만의 색깔을 가진 새로운 세상을 선택하고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멀티유니버스는 영화 속 허구가 아닌, 우리 모두가 매일 겪는 현실의 또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