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익힘의 정도가 이븐하다" 암기와 이해의 심리적 차이

by 황준선

어떤 것을 외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열심히 읽고 집중했다는 증거이지만, 그것이 곧 이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주관식이 없는 이해는 이해가 아니다. 예를 들어, 성경이나 코란과 같은 성서는 수천 년 동안 동일한 글자로 남아 있다.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면서 문화적 차이가 반영되긴 하지만, 원래의 내용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교의 가르침은 다르다.


부처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말을 기록하지 말고, 각자의 언어로 이해하고 전달하라고 했다. 이는 진리와 깨달음의 본질이 고정된 언어 속에 갇혀서는 제대로 전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처의 가르침은 단순히 문자로 표현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듣는 사람의 마음과 경험 속에서 직접 체험되고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언어는 본래 한계가 있고, 각 사람의 배경, 문화, 경험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고정된 말이나 글로 진리를 기록하게 되면 그것이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기 쉽고,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의 의미가 왜곡되거나 오해될 가능성도 커진다. 부처는 이러한 위험을 피하고자, 각자가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하라고 한 것이다.


이는 깨달음이 각자의 체험과 연결된, 살아있는 것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부처의 가르침은 단순히 외워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고 이해해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글자로 적혀 있는 성경이나 경전을 아무리 열심히 읽고 암기한다고 해도, 그것을 이해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단지, 그것을 보지 않고 외울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해했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해는 다르다. 이해란 어떤 글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나의 경험과 느낌, 해석을 통해 나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넷플릭스


예를 들어, 최근 많은 사람이 맛보고 싶어 했던 ‘흑백요리사’의 파스타를 생각해보자. 만약 누군가 그 파스타를 먹고 나서 그 가격, 소스의 양, 소금의 양, 파슬리의 양, 후추의 양 등을 모두 외워서 말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그 파스타를 진정으로 음미했다고 보기 어렵다. 반면, 파스타를 먹고 “맛의 의도를 모르겠다” 또는 “야채의 익힘 정도가 이븐하다, 타이트하다” 등 자신의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으로 음식을 음미, 즉 이해한 것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반복해서 외운 일을 하는 것은 숙달된 실행에 가깝다. 그러나 어떤 일을 이해했다면, 그것에는 나만의 주관적 해석과 경험, 그리고 음미가 필수적으로 포함된다. 이는 단순한 암기가 아닌, 진정한 깨달음의 과정이며, 우리가 더 깊은 차원에서 삶을 이해하고, 체험하며, 전하는 방식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박서준, 성시경 학폭 피해에 담긴 심리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