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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해봐야, 불안정해봤자

by 황준선

그럴 수밖에 없는 순간들

어느 날, 퇴근길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무 준비도 없이 집까지 걸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늘을 보니, 우산은 없고,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기껏해야 할 수 있는 건 비를 맞으면서 가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이때 나는 문득 깨달았다. 지금 내가 가진 선택은 별로 없어 보이지만, 어쩌면 그게 가장 안정적인 상태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인생에서 그런 비 오는 날을 마주한다. 취업 준비를 할 때, 인간관계가 불안할 때, 혹은 인생의 방향을 잃었을 때처럼 말이다. 선택지도 없고, 앞날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땐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이 상황이 언제 끝날까?" 하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불확실하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조금은 편안해진다. 오히려 "지금은 불확실하구나" 하고 깨달은 그 순간부터 그 불확실함이 약간은 해소된 것 같다. 불안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데서 오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구나'라고 인정하면 더 이상 쓸데없는 예측을 멈출 수 있다. 결국 내가 알 수 없는 것들에 집착하는 대신, 그 순간을 그냥 겪어내는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는 거다.


비 오는 길에 서 있는 나처럼, 그냥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다. 비에 젖는 걸 피할 수는 없지만, 어느 순간엔 그 젖음조차 익숙해지고, 어쩌면 재밌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끔은 그저 젖어 가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선택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할 때, 해야 할 일은 그 불확실을 마주하며 견디는 것. 그걸 인정하는 순간, 오히려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상황이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그렇게 매일의 비를 맞으며 살아가고 있다.

결국 불확실함 속에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그 불확실을 인정하며 그냥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저 멀리 햇살이 보이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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