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매일 고칼로리 음식과 술을 즐기면서도, 막상 당뇨 진단을 받으면 "이 나이에 벌써 당뇨라니요?"라고 놀란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충격받는 이 반응은 인간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최근 삼성전자의 위기도 심리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뻔히 예상되는 일이었다.
삼성전자는 오랫동안 '좋은 회사'로 불려왔다. 높은 월급과 훌륭한 복지를 제공하면서 안정성을 유지했기 때문에 훌륭한 기업이라는 평을 받아온 것이다. 그러나 '좋기만 한' 회사는 회사로서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 "저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야"라는 의미가, 사실은 저 사람이 뭐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른다는 뜻이라는 것과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삼성전자 위기는 틀린 결정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의사결정권자가 무(無)심리였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차근차근 알아보자.
데이터는 객관적이다. '80점'이라는 숫자는 누구에게나 80이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다.
"80점 정도면 보통이네",
"20점만 높았으면 100점인데 아깝다",
"80점 정도면 잘한 거 아니야?",
"80점이 뭐 어쩌라고요 귀찮게 하지마세요"
여기서 틀린 반응이란 없다. 80이라는 숫자를 해석하는 건, 해석하는 사람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의미부여없이 80이라는 숫자를 90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헛수고에 불과하다. 나에게 80이 무엇이며, 90은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한 체, 90이 80보다 10만큼 크니까 더 좋은 게 아니냐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위기를 설명하는 핵심도 여기에 있다.
삼성의 결정권자들도 판단을 내리기 전에 각종 보고서와 데이터를 본다. 삼성의 상황을 나타내는 데이터를 보고 위기 의식을 느끼든, 반대로 안정적이라고 느끼든 상관없다. 이건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데이터를 보면서 새로운 전략이나 방향성을 구상하지 않고, 그저 수치를 아름답게 유지하는 데 급급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데이터를 보고 해석하기보다는 데이터를 '좋아 보이게'만 하는 것에 매몰된 것이다.
만약 삼성전자가 현재의 상태에 만족했다면 그것을 잘 유지하기 위해 인프라를 더욱 공고히 만들고, 안정적 수익 창출을 위해 공격적 투자는 줄이고 기존 수익을 탄탄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삼성이라면 성공시켰을 판단이다. 반대로, 위기 상황으로 인식했다면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전략을 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도 안심도 아닌 그 어떤 마음으로도 보지 않겠다는 '무'심리가 작동했고, 두 가지 판단의 단점만 쏙쏙 빼닮은 수를 둔 것이다.
삼성전자가 AI 산업의 기회를 놓쳤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AI에 대한 준비 여부가 아니라, 회사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무심리'가 작동하면 천하의 삼성이고 더 나아가 애플이든 구글이든 결말은 뻔하다. 이는 기업뿐 아니라 우리 개인이 데이터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확하고 풍부한 데이터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바라볼지를 결정짓는 사람의 심리다. 데이터는 해석자가 의미를 부여하기 전까지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그 의미를 찾는 건 오롯이 데이터를 해석하는 사람의 몫이다. 삼성전자의 사례는 지금 우리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다. 데이터를 보되, 이를 단순히 숫자로 해석하기보다 의미와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는 심리적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참고자료
심리학으로 제품 흥행 여부 예측하는 방법: https://brunch.co.kr/@zeropartydata/32
갤럭시 s24로 AI 산업 동향 파악하기: https://brunch.co.kr/@zeropartydata/57
심리학이 인공지능 세상에 필요한 이유: https://brunch.co.kr/@zeropartydata/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