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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알고 있는 심리 검사는 틀렸다

단순한 점수에서 벗어나, 진짜 의미를 찾는 검사로

by 황준선

점수 중심의 검사, 본질을 놓치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사용해 온 심리검사의 구조를 돌아보면,

대부분 어떤 점수를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예컨대 “나는 매사에 의욕적이다”라는 문항에 ‘매우 그렇다’라고 응답하면 높은 점수,

“나는 요즘 지치고 무기력하다”라는 문항에 같은 방식으로 응답하면 낮은 점수를 받는 식입니다.


이런 방식은 응답자의 상태나 배경, 맥락은 고려하지 않고

단지 ‘높음은 좋음’, ‘낮음은 문제’라는 이분법적 사고 그 이상으로 해석할 수 없게 합니다.


“나는 매사에 의욕적이다” → 매우 그렇다 = 좋은 점수
“나는 요즘 지치고 무기력하다” → 매우 그렇다 = 나쁜 점수



심리 특성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작용한다

하지만 심리적 반응은 수치로 단순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똑같은 심리적 특성이라도

어떤 상황에서는 강점이 되고, 다른 환경에서는 약점이 되기도 합니다.


음악가에게 예민함은 장점일까요, 단점일까요?

창업가에게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은 장점일까요, 단점일까요?


그럼에도 지금의 문항들은 한 가지 특성이 사람의 기질과 환경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다면적 특성을 무시한 채,

사람을 한 줄로 세우는 데 집중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며,

그것은 숫자가 아닌 해석에서 시작됩니다.


지금까지는 연령, 성별, 직급, 근속연수 같은 인구통계학적 기준으로 그룹을 나눈 후,

각 집단의 평균을 비교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단지 표면적인 차이만을 보여줄 뿐,

왜 그런 반응이 나왔는지, 어떤 경험의 축적이 그러한 응답을 만들었는지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숫자가 아니라 패턴을 읽어야 한다

사람은 단지 나이나 성별로 나뉘지 않습니다.

같은 연령대 안에서도 누구는 성취에 예민하고, 누구는 관계에 민감하며, 또 누구는 안정감을 중시합니다.


이처럼 개인의 심리적 구조는 통계적 분류가 아니라,

실제 응답 패턴을 통해서만 드러납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응답을 수집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응답들이 형성하는 심리적 패턴을 읽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일이 많을수록 집중이 잘 된다”,

“요즘 내가 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 모르겠다”,

“업무 속도보다 관계의 질이 더 중요하다”와 같은 응답을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지금까지는 이처럼 각기 다른 항목들을 나눠서 점수를 매기고 평균을 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반응들이 함께 나타나는 관계 속에서 의미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이 다층적인 구조를 AI가 읽을 수 있다

이처럼 다차원적 관계를 읽는 일은 단순 통계로는 어렵지만,

AI는 이러한 복합적 응답 구조를 파악하고,

“이 사람은 외적으로는 몰입하지만 내적으로는 일의 의미를 잃고 있다”와 같은 해석적 문장을 도출해 낼 수 있습니다.


AI는 점수를 계산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의 내면 구조를 읽어내는 해석의 파트너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곧 질문의 구조, 즉 검사 문항에서 시작됩니다.



검사 문항부터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앞으로의 검사 문항은
처음부터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각 문항은 ‘좋은 점수를 주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응답자의 생각과 성향, 경험을 담아낼 수 있는 창이 되어야 합니다.


개별 문항이 모여 ‘좋은 특성’이나 ‘나쁜 특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응답자의 고유한 심리적 반응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하겠죠.


검사의 목적은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개선’이 아닌 ‘재정의’의 시점

이러한 질문들은 단순한 점수 산출이 아니라,

사람의 심리적 구조를 드러내는 ‘재료’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 재료를 분석하고, 그것을 해석 가능한 언어로 바꾸는 일은

이제 전문 지식이 없이도 AI가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는 단지 기존 검사의 일부를 개선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검사라는 틀과 목적 자체를 재정의하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AI 시대의 심리검사는 단지 누가 더 좋은 점수를 받았느냐가 아니라,

“왜 그렇게 반응했고”,

“무엇이 이 사람의 동기이며”,

“어떤 점에서 변화 가능성이 있는지”,

“이러한 구조가 어떤 실천 루틴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까지 이어지는 이해.

한 사람의 인식, 상황, 문제, 해결을 총제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그 변화의 시작은 우리가 던지는 질문 하나하나를 바꾸는 데서 출발합니다.


숫자가 아닌 사람의 패턴을 보고,

그 패턴을 데이터 속에서 읽어내며,

해석은 AI가 도와주는 방식.


그것이 심리검사가 ‘측정의 시대’를 넘어

‘이해와 변화의 시대’를 맞이하는 올바른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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