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고민의 생산과 유통
이수진(28)은 요즘 코가 신경 쓰입니다.
원래는 괜찮았습니다. 거울을 봐도 별로 불만이 없었어요.
그런데 유튜브에서 각자가 '추구미'를 찾아야 한다는 영상을 보고
"내 추구미는 뭐지?"라는 가벼운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거울을 볼 때마다 코가 눈에 띕니다.
내 스마트폰을 누가 해킹이라도 한 건지 그 후로 '자연스러운 코 성형' 광고가 뜨고,
유튜브는 '콧대 높이는 메이크업'을 추천합니다.
그녀는 성형외과 상담을 예약했습니다.
박민수(35)는 요즘 불안합니다.
연일 집값이 고공행진을 하더니, 지금은 또 주식이 오른답니다.
"'S&P 500?' 들어는 본 것 같은데... "
누구는 여기에 전재산을 투자한다는 말도 들리고
금값은 정말로 금값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저 모은 돈을 저축할 줄만 알았던 자신이 뒤처지는 것 같습니다.
유튜브에서는 "30대에 1억 모으기"를 외치고,
파이프 라인을 구축하니 뭐니 하며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늦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주식에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성형외과 광고는 주로 쌍꺼풀 수술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광대뼈 축소, 입꼬리 올리기, 이마 볼륨, 턱 보톡스, 콧구멍 축소, 인중 단축...
20년 전 사람들은 이런 부위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성형외과와 뷰티업계는 계속해서 새로운 '결함'을 만들어냅니다.
전문가들이 얼굴을 분석하고, 황금비율을 제시하고,
"이 부분이 조금만 달라지면 훨씬 나아집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제품을 바르면 피부 톤이 확 밝아진다고 말합니다.
그 순간, 없던 고민이 생깁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적게 모았을까? 나는 뒤처지는 건 아닐까?
세상은 이 불안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령대별 자산 기준'을 만들고, '정상적인 포트폴리오'를 제시하고,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정작 중요한 질문은 놓칩니다.
"나는 왜 돈을 모으려는가?" "얼마가 있어야 나는 행복한가?"
결혼 적령기라는 말, 30대 즈음에 들어서면 신경 쓰이게 됩니다.
그런데 '적령'이라는 단어의 뜻, 제대로 알고 계신가요?
표준이나 기준에 맞다는 뜻입니다.
흠?
이혼 전문 변호사는 자신이 담당했던 이혼 사례들을 이야기하고
결혼정보회사는 출산까지 생각한다면 더 일찍 결혼을 준비해야 한다면서 가입을 유도합니다.
결혼은 해야 한다 vs. 할 필요 없다는 주제도 끊임없이 생산됩니다.
나 정도 조건의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상한선을 정하고,
적당히 성실하면서 개성도 강하지 않으며,
부모와의 사이도 좋지만, 또 너무 효심이 깊진 않은...
그런 사람과 결혼하면 잘 맞을까요? 정말 그럴까요?
한국의 이혼율은 좀처럼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사례들에서 공통점이 보이나요?
원래는 신경 쓰지 않던 것을 '문제'로 만듭니다.
전문가의 입을 빌려 기준을 제시하고, 당신이 그 기준에 못 미친다고 말합니다.
"남들은 다 하는데",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늦습니다", "이 나이면 이 정도는 있어야죠".
'생에 한 번뿐인...', '나중에 하면 돈을 2배로 더 드는..' 이런 문구도 필수죠?
비교와 조급함을 부추깁니다.
고민을 잔뜩 심어준 뒤에, 결말은 언제나 '결제(payment)'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생략되기 마련이죠.
"이것이 정말 당신의 고민인가요?" "이것을 해결하면 당신은 행복할까요?"
성형외과든, 금융상품이든, 결혼정보회사든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내가 소비하는 것인가,
소비되는 것인가?
성형을 하면 뷰티 산업과 성형외과가 돈을 법니다.
적금을 들고 주식에 투자하면 금융회사가 수수료를 받습니다.
결혼을 하면 웨딩업체, 스튜디오, 여행사가 돈을 법니다.
이것 자체는 시장에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나쁜 사람(업계)들은 더더욱 아니고요.
하지만 생각해봐야 합니다.
"나는 왜 이걸 해야 한다고 느끼는가?"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해서인가?"
"아니면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가?"
가짜 고민의 가장 큰 특징은
나의 고민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어느 순간 고민이라고 믿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진짜 고민과 가짜 고민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가짜 고민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외부에서 주입됩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광고, 기사, SNS.
밖에서 들어온 기준입니다.
2. 나의 고민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이미 고민이 되어 있습니다
언제부터 이게 고민이었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어느 순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3. "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이 있습니다
왜 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안 하면 불안합니다.
4. "남들은 다 하는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만 안 하면 뒤처질 것 같습니다.
5. 구체적인 숫자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30대 평균 자산", "이상적인 키", "적정 연봉". 숫자는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누군가 만든 기준입니다.
6. 돈으로 쉽게 해결됩니다
복잡한 과정 없이, 돈만 내면 바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짜 노력입니다.
그리고 이 사이클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실제로 이득을 본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세요.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나요?
아니면 그 고민을 만든 사람들의 주머니가 무거워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