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 가진 힘을 믿을 것
제가 빡센 학원을 주말마다 다니고 있어요.
토요일에는 국어·영어·과학을 듣고, 일요일에는 수학·사회를 들어요. 주중에는 또 다른 영어 학원과 1대1 수학 학원도 다니고 있고요.
이렇게 학원을 여러 개 다니는 이유는, 아무래도 강남이다 보니 학생들 수준이 높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고, 제가 미술을 해서 예고를 준비하는데 예고 내신 대비 수업이 대치동에만 개설돼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다니게 됐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다니다 보니 주말에 가는 학원 숙제를 할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거예요. 숙제를 하긴 하는데, 제대로 이해하면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숙제를 다 해가기 위해서’ 억지로 하는 느낌이에요. 솔직히 저한테 도움이 되는 공부라는 생각도 잘 안 들고요.
그렇다고 학원을 끊자니, 위에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쉽게 결정을 못 하겠어요. 다른 애들은 다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저만 뒤처질까 봐 너무 두렵거든요. 저는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서, ‘못 할 거면 아예 안 한다’는 생각이 커요. 그래서 학원을 끊었다가 결과가 안 좋으면 그냥 포기해 버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재수나 수시 실패, 자퇴 같은 안 좋은 미래가 계속 눈앞에 아른거려요… 진짜 너무 무서워요.
그런데 또 숙제를 조금 줄여달라고 말하자니, 선생님들한테 제가 열심히 안 하는 애로 보일까 봐 그게 정말 싫어요. 저는 성실하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학생으로 보이고 싶거든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감당이 안 되니까 숙제를 덜 해가거나, 숙제는 했는데 엉망이라 시험을 망치는 식으로 더 안 좋은 모습만 보이게 돼요.
그래서 그냥 다 포기하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너무 힘들어요…
제 고민 좀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싶어요.
아무나 고민을 해결해 줄 수는 없지요.
설령 누군가가 당장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해도, 또 다른 고민이 다시 작성자님을 괴롭힐 겁니다.
그 악순환을 스스로 끊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작성자님은 기본적으로 걱정이 많고, 예민하고, 불안을 잘 느끼는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걱정 많음, 예민함, 불안함이 꼭 나쁜 특성일까요?
이런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섬세하고 꼼꼼하며, 감수성이 풍부합니다.
작성자님이 어느 정도 공부 머리가 있으니, 조금 어렵게 설명해 볼게요.
인간도 결국 동물입니다.
그렇다면 동물 중에서 예민한 동물과 둔감한 동물 중, 누가 더 생존에 유리할까요?
당연히 예민한 쪽이겠죠.
둔감한 동물은 맹수가 다가와도 눈치채지 못하고 잡아먹히고, 독이 든 버섯도 의심 없이 먹다가 죽어요.
이렇게 보면 예민하고 불안이 많다는 건 생존에 유리한 특성이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꼼꼼하다,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장점으로 나타나고요.
그 특성을 좋고 나쁨 중 어떤 쪽으로 받아들이느냐는 마음먹기에 달려있을 뿐이에요.
이제 작성자님의 기본적인 심리 상태를 짚었으니, 조금 더 구체적인 조언을 드릴게요.
‘이미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일’을 구분해 보세요.
사연을 보면 “~될까 봐 걱정돼요”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말은 아직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막상 일이 닥치면, 작성자님은 그때그때 잘 해결해 오셨잖아요.
그러니 종이에 이미 일어난 일과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두려운 일을 나눠서 적어 보세요.
그리고 현재의 나는 "이미 일어난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자"라고 마음먹는 겁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더 많이 걱정한다고 해서, 그 일이 일어날 확률이 낮아지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걱정을 안 하면 그 일이 더 잘 일어날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그건 대비도 아니고, 대책도 아니고, 예측도 아닙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현재의 에너지를 빼앗기는 행동일 뿐이에요.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볼게요.
내일 아침 폭설이 온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두꺼운 외투를 입고, 미끄럽지 않은 신발을 신으면 되겠죠.
설령 예고 없이 폭설이 쏟아져도, 더 조심조심 걷고 상황에 따라 약속이나 학원을 쉬는 식으로 하나씩 대응하면 됩니다.
날씨는 걱정으로 조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눈이 많이 올까 봐 하루 종일 걱정하는 건, 걱정이 가진 에너지를 잘못 사용하는 거죠.
정리해 볼게요.
1. 걱정과 불안은 없애야 하는 특성이 아니다, 잘 이용하면 나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친구들이다.
2. 해결해야 하는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을 구분해서 해결해야 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자.
3. '착하고, 섬세하고, 독특하고, 완벽주의자인, 당신을 위한 문장들'이라는 책이 있어요. 여기에서 챕터 2, 4를 읽어보시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이것 말고 더 보태야 할 조언은 없습니다.
이 정도 이야기만 들어도 작성자님은 잘 해내실 분이에요.
지금까지도 충분히 잘 해오셨고요.
작성자님은 스스로를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사연을 읽은 저는 조금도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불안이나 고민을 못하고 있다는 증거로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처럼만 가셔도 괜찮습니다.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심리학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이유는,
‘불안은 없애야 할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에요.
걱정이 많은 사람에게는 그 나름의 장점과 단점이 있고,
반대로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는 사람에게도 분명한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이건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특성의 문제예요.
그런데 우리는 유독 불안을 나를 괴롭히는 적이자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봅니다.
이 관점만 바뀌어도 많은 문제가 풀리기 시작해요.
제 답변을 찬찬히 읽어보셨다면 느끼셨을 텐데,
이 친구는 그 인식을 바꾸고, ‘if’에 쏟는 에너지만 줄여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에요.
예고든, 예대든, 서울대든, 와튼 스쿨이든 어디든 갈 수 있는 재능을 이미 갖고 있습니다.
결국 관건은 이것뿐이에요.
내가 할 수 있다고 마음먹을 것인지,
그 마음을 믿을 것인지,
그리고 내가 가진 특성을 적이 아니라 친구 삼아 묵묵히 세상으로 걸어갈 것인지.
걱정 많은 10대 소녀가 꿈을 이뤄서 아름다운 삶을 쌓아가도록 무언의 응원을 보내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