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창작자가 뉴스레터를 제작하기 위해 만나다
03.
디자이너가 필요했습니다.
뉴스레터를 만들기 위한 도구를 찾았지만, 그 안과 밖을 어떤 색으로 칠해야 할지, 대문에는 어떤 문양을 새겨야 할지 막막해졌습니다.
제가 가진 건 단어들뿐이었거든요.
내가 구상하는 개념들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시각 언어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이어졌죠.
결국 저는 제 머릿속의 안개를 걷어내 줄 파트너를 찾아 나섰습니다.
RISD(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출신의 디자이너 'choee'를 만난 건,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매듭의 모양을 결정짓는 일이었습니다.
보통 많은 이들이 디자이너를 '타인의 생각을 대신 구현해 주는 직업'이라 생각하곤 합니다.
누군가 시키는 대로,
기획안에 적힌 대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실행자로 보는 것이죠.
저는 디자이너도 아니면서, 디자이너를 이렇게 취급하는 게 싫었어요.
아이겐 노트(eigen knot)에서 디자인은 글의 부속품이나 장식이 아닙니다.
디자인 그 자체로 제 글이라는 콘텐츠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독립적인 하나의 작품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텍스트가 닿지 못하는 사유의 끝을 디자인이 완성하고,
디자인이 던지는 질문을 텍스트가 받아내는 —
그런 수평적인 창조(라고 하면 너무 멋 내는 말 같지만)의 세계를 꿈꿨습니다.
그래서 저는 choee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정중히 제안했습니다.
파트너로서의 창작: 콘텐츠를 깊이 읽고, 그 이면의 은유를 choee만의 디자인 언어로 재해석하는 방식. 글과 디자인이 서로를 완성하는 두 개의 독립된 작품으로 만나는 것.
디자이너로서의 협업: 제가 전달하는 레퍼런스와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일관된 톤 안에서 시각 요소를 제작하는 방식. 해석의 자유도는 줄되, 방향의 명확함을 택하는 것.
저는 그녀에게 어떤 방향이 더 끌리는지 물었습니다.
어떤 방식이든 전문가로서의 보상과 크레딧은 당연한 전제였습니다.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외주'로 소비하지 않고,
하나의 '영혼'을 가진 창작자로 존중하는 것.
그것이 이 프로젝트가 시작부터 지키고 싶었던 원칙입니다.
choee와의 대화는 무척 리드미컬했습니다.
그녀는 새로운 자극에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하고 본질을 포착하는 감각의 소유자라,
제 사유의 템포를 완벽하게 받아쳐 주었거든요.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느라 우리의 대화는 주로 밤에 이루어졌지만
그 속에서 아이겐 노트의 형체는 순식간에 빚어졌습니다.
재밌는 TMI 하나 꺼내볼까요?
이토록 역동적인 그녀가 사실 '청소광'이라는 점입니다.
집에 초대되어 갔는데, 모델하우스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요.
심리학자인 제 눈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MBTI가 'F'와 'T'가 반반이라는 그녀.
빠르지만 신중하고, 짭짤하면서도 달콤함을 원하고, 냉탕이면서 온탕을 원하는 그녀의 양가적인 감각을 정돈하는 방식이 바로 청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
그렇게 픽셀 하나, 여백 한 칸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갈한 고집은,
어쩌면 제가 추구하는 아이겐 노트의 세계와 닮아있었습니다.
지저분한 노이즈를 걷어내고 본질만 남기려는 그녀의 청소 본능이,
제 글의 군더더기를 시각적으로 말끔히 치워주고 있었죠.
창작물은 창작자를 닮아야 잘 돼요.
그래서 반전 매력을 담기로 했어요.
'반전 매력'이라는 다소 상투적이지만, 지극히 주관적이라 더 소중한 전략이랄까요.
먼저 저부터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저의 책이나 저라는 사람을 볼 때 다정한 사람이라는 첫인상을 갖거든요.
그런데 제 글이나 사고방식은 생각보다 차갑고 예리하게 찌를 때가 더 많아요.
나쁘게 얘기하면, 묘하게 싸가지가 없더라?라고 할 수도 있고요
좋게 얘기하면, 사탕발린 말은 안 하는 사람이죠.
디자이너 choee도 마찬가지였어요.
이 선택이 나을까, 저 선택이 나을까 늘 고민하는 사람 같아 보이거든요.
그런데 막상 다른 사람들은 쉽게 압도되거나 집단에 휩쓸려 분노할 만한 상황에서
놀라운 침착함과 신중함을 보여줘요.
이런 두 사람이 만났으니, '반전 매력'이라는 키워드가 자연스럽게 설득력을 얻어갔습니다.
그래서 입구는 따뜻한 베이지와 크림톤으로 사람들을 다정하게 맞이하되,
구독이라는 문을 열고 들어온 뉴스레터 본진은 다소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시선처리와 색감을 선택했어요.
마치 간판 없는 스피키지 바*에 초대받은 것처럼요.
*스피키지 바(Speakeasy Bar): 1920년대 미국 금주령 시대, 단속을 피해 숨겨져 있던 은밀한 밀주 술집에서 유래한 콘셉트 바. 간판이 없거나 독특한 입구, 비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고품격 칵테일과 위스키를 즐기는 이색적이고 프라이빗한 공간이 특징입니다.
디자이너 choee를 나와 대등한 창작자로 존중했을 때,
브랜드는 제가 혼자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근사한 얼굴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공간의 얼굴도 정해졌으니, 그 안을 채울 진짜 이야기들을 분류할 차례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성에서 우리가 나누게 될 주간의 속도와 월간의 밀도,
'154 knots'와 '32 MJ'에 대한 지도를 그려보려 합니다.
뉴스레터, 아직 짓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정리된 모습보다는,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이 시작점을 가장 먼저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오시면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던 이야기들을, 누구보다 가장 빨리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igen knot - 아이겐 노트 지구에서 가장 빨리 둘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