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와 32 사이의 리듬

by 황준선

04.

뉴스테러의 외관이 정해졌으니, 이제 그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정할 차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겼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결이 하나가 아니었거든요.


어떤 이야기는 가볍고 빠르게 던지고 싶었습니다.

한 주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겪는 이슈를 다루는 글.


반면 어떤 이야기는 시간을 들여 깊이 파고들어야만 의미가 생기는 종류였어요.

한 문단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천천히 씹어야 맛이 나는 글.


이 두 가지를 한 그릇에 담으면 어떻게 될까 상상했어요.

가볍게 읽으러 왔는데 논문 같은 글이 나오고, 깊이 있는 사유를 기대했는데 짧은 메모가 나오면?

독자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eigen knot는 처음부터 리듬을 둘로 나누기로 했습니다.


154 knots — 이륙의 속도

공책이 아니라, 속도를 말해요.

맞아요 비행기 타면 스크린에 보이는 바로 그 숫자죠.


154 knots.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다 바퀴를 떼는 순간의 속도입니다.


아직 하늘에 오른 건 아니지만, 더 이상 땅 위에 있지도 않은 그 찰나.

저는 그 순간이 좋았어요.

완성된 결론이 아니라, 무언가가 시작되려는 기운.


'생각의 이륙 직전'이라는 감각을 매주 한 번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간 콘텐츠의 이름을 154 knots로 정했습니다.


첫 번째 주간 이야기는 1 knot, 두 번째는 2 knot — 이렇게 매듭이 하나씩 묶여갑니다.


154 knots는 매주 일어나는 일상 속의 뉴스와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러나 가볍지는 않습니다.


활주로 위의 비행기가 154 knots에 도달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듯,

가십거리로 소모될 수 있는 글 안에 생각의 밀도를 압축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이거든요.

(사실 글 쓰는 입장에서 짧은 글이 더 무섭습니다. 길면 어딘가에 숨을 수 있는데, 짧으면 숨을 곳이 없어요.)


154 knots가 독자에게 드리고 싶은 건 이런 겁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일 속에서 숨겨진 의미를 찾는 거죠.

그리고 그 의미를 찾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겁니다.


마치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이륙의 그 순간처럼

나를 나답게 살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져 지는 거죠.


32 MJ — 궤도에 오르는 에너지

32 MJ.

1kg의 물체를 지구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필요한 최소 에너지입니다.

154 knots가 이륙의 순간이라면, 32 MJ은 궤도에 안착한 이후의 세계입니다.


한번 궤도에 오르면 더 이상 연료를 태우지 않아도 됩니다.

관성만으로 지구를 돌 수 있어요.


저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한번 읽으면 독자의 사고 체계 안에 자리 잡아서,

이후의 판단과 선택에 조용히 영향을 미치는 글.


그래서 월간 콘텐츠의 이름을 32 MJ로 정했습니다.

첫 번째 월간 이야기는 1 MJ, 두 번째는 2 MJ...

매달 하나의 에너지가 쌓여갑니다.


32 MJ은 깁니다.

하나의 주제를 여러 각도에서 뜯어보고,

심리학과 다른 문학들의 은유를 교차시키며,

때로는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154 knots가 '톡' 하고 두드리는 거라면,

32 MJ은 '자, 앉아봐'하고 의자를 끌어주는 겁니다.


커피 한 잔의 시간으로는 부족하고,

조용한 저녁 한 시간 정도의 여유가 필요한 글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32 MJ은 저한테도 부담이 큰 포맷입니다.

한 편을 쓰는 데 몇 주가 걸리기도 하고,

쓰다가 처음부터 다시 엎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그 부담이 싫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이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우주로 나아가는 동안 겪어야 하는 고통을 견딜 힘을 주고 싶거든요.


속도와 에너지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54 knots(주간)는 생각의 이륙입니다.

짧고, 빠르고, 여운을 남깁니다.

매주 하나의 knot가 묶입니다.


32 MJ(월간)은 사유의 궤도입니다.

길고, 깊고, 한번 자리 잡으면 오래 남습니다.

매달 하나의 MJ이 쌓입니다.

tempImagemBnr5R.heic 푸른 어둠의 바다 위를 가르는 불빛과 비행기 창밖의 붉은 노을 사이로, ‘eigen knot’이라는 이름이 떠 있다.




eigen knot의 문이 열렸습니다.

비계를 걷고, 페인트도 말랐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가 그 안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들어오시면,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던 이야기를 가장 먼저 만나실 수 있습니다.

eigen knot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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