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심리에 악역이 필요한 이유
이 글을 쓰자마자, 개인 유튜버로 독립한 김선태의 첫 영상이 올리왔었네요. 그의 첫 영상을 보고 이 글을 읽으면 사건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 이해가 될 거예요.
05.
첫 번째 knot의 주제는 충주맨이었습니다.
공공기관 최초 약 97만 유튜브 구독자.
그리고 갑작스러운 퇴사.
당사자의 이유는 짧고 간결했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원한다.'
그런데 대중은 그 짧은 문장을 가만히 놔두지 못했어요.
대단학 업적과 퇴사 사이에는 설명되지 않는 공백이 있었고,
인간은 그 공백을 참기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유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가장 흥미롭게 설명하는 가설이 바로 '시기질투'였죠.
동료 공무원을 악역으로 세운 뒤에 그들을 비난하는 것.
"공무원 조직이 원래 꽉 막혀서~ 어휴 나 같으면 일주일도 못 다니지."
공무원과 그 조직에 대한 선입견은 그 루머를 퍼뜨리기에 좋은 토양이었습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얼마나 믿을만한가가 중요하거든요.
그리고 대중들은 그를 욕하며 자신의 지루하고 또 무가치한 일상을 잊는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그렇게 복잡한 이야기는 사라지고
단순한 키워드만 남아 여러 입에 오르내리다가 사라지는 패턴.
익숙하죠?
불과 2주일 전만 해도 뜨거운 주제였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쏙 들어간 것처럼요.
그러나 가끔씩은 이렇게 뒷북을 쳐야 사건의 핵심이 잘 보일 때가 있답니다.
그게 1 knot의 출발점이었습니다.
eigen knot는 글만 있는 뉴스레터가 아닙니다.
유튜브도 함께 올리거든요.
그런데 저는 영상 제작자가 아니라 글 쓰는 사람이라, 오디오만 필요했어요.
그래서 AI 음성 서비스를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ElevenLabs라는 서비스인데, 제 목소리를 먼저 입력해 두면
그 목소리로 텍스트를 읽어주는 방식이에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두 번째로 비싼 요금제를 질렀습니다.
마이크도 필요했겠죠.
그래서 10만 원대 초반짜리를 마이크를 중고로 사느라 부랴부랴 당근 거래를 했어요.
이왕 음성을 입력할 거, 책도 같이 읽자는 마음으로
에릭 호퍼의 <인간의 조건>을 전자책으로 구매해서 꼬박 한 권을 다 읽었습니다.
나름 녹음에 좋은 환경을 갖춘다고
겨울 옷으로 가득 찬 옷방에 쭈그려 앉아 2시간을 보냈어요.
협소한 공간에 옷이 많으면 소리가 울리지 않고 주변 소음도 줄어들거든요.
그러나?
결과는 대실패!
2시간 동안 땀 흘리며 녹음한 파일을 올렸는데, 결과물이 영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professional이라는 그 고급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거겠죠 아마도.
그렇게 아쉬운 대로 간단한 버전을 사용했는데, 그게 훨씬 낫더라고요.
별 기대 없이 20초짜리 저의 목소리 파일 2개만 학습시켰거든요.
2시간 대 40초.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것도 하나의 교훈이에요.
양이 질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건
글쓰기에서도, AI에서도,
대중의 판단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원리니까.
녹음은 실패했지만, 소리 내어 읽은 에릭 호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호퍼는 대중 운동과 군중 심리를 읽는 통찰이 정말 뛰어나거든요.
그의 시선은 충주맨을 둘러싼 대중의 행동을 분석하는 데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들어맞았어요.
공백을 참지 못하는 심리, 악역을 필요로 하는 서사 구조,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것 등...
호퍼가 수십 년 전에 써놓은 문장들이 2026년의 댓글창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습니다.
녹음하려고 읽은 책이 글의 뼈대가 되어버린 셈이죠.
목적과 결과가 완전히 뒤바뀐 건데,
돌이켜보면 이런 우연이 가장 좋은 글을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계획대로 되는 글은 예측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글은 재미가 없으니까.
충주맨이라는 소재,
에릭 호퍼라는 렌즈,
옷방에서의 삽질,
20초의 반전.
이 모든 게 엉켜서 eigen knot의 첫 번째 매듭이 되었습니다.
글과 이미지, 그리고 유튜브 영상까지.
처음 구상했던 것보다 훨씬 풍성한 모양의 매듭이 묶였어요.
첫 편을 완성하고 나서 든 생각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이제부터 이걸 매주 해야 하는구나.'
설 연휴의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에다 쓴 듯해요.
그래도 자신에게 기대가 됩니다.
다음 knot에서는 또 어떤 우연이 글을 완성해 줄지, 저도 아직 모르거든요.
1 knot — 충주맨 사태
eigen knot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공백을 참지 못하는 인간의 심리, 군중이 서사를 만드는 방식,
그런 대중의 심리를 분석하는 저만의 시선으로 본 2026년의 댓글창.
이 모든 이야기가 첫 번째 매듭 안에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