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김선태의 유튜브 독립과 그를 향한 대중들의 심리
06.
eigen knot에서 김선태 씨의 독립과 대중들의 반응을 다룬 글이 발행된 지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일이 하나 벌어졌어요.
김선태 채널의 광고 단가가 유출된 겁니다.
문건의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입이 떡 벌어지는 광고료에 소셜 플랫폼이 떠들썩합니다.
반응은 둘로 갈렸어요.
"100만 유튜버면 그 정도는 당연하지"라는 쪽과
"유튜버가 저렇게까지 번다고?"라는 쪽.
감탄과 의심이 동시에 쏟아지는 풍경.
제가 쓴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대중은 김선태의 도전을 통해 '희망'을 보고,
김선태가 될 수 없다는 '좌절'을 동시에 느낀다
광고 단가를 둘러싼 지금의 반응은
이 문장의 실시간 증거처럼 보입니다.
공무원이었을 때는 "월급도 적을 텐데 대단하다"라고 응원하던 사람들이,
100만 유튜버의 광고료라는 큰 숫자 앞에서는 "결국 돈이었네"로 돌아서는 것.
공무원이라는 꼬리표가 사라진 뒤 그를 대하는 대중들의 심리가
정확히 그 순서대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맞췄다고 자랑하고 그런 건 아니고요)
사실 이 글이 처음부터 이런 결론을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닙니다.
초고는 두 덩어리였어요.
앞쪽은 김선태라는 사람의 성격 분석,
뒤쪽은 그를 둘러싼 군중 심리.
각각은 나름 괜찮았는데,
합쳐놓으니 이상했습니다.
앞부분을 읽다 보면 "김선태 이야기구나" 싶다가,
뒤에서 갑자기 "이건 우리 이야기입니다"로 바뀌니까.
독자 입장에서는 다른 글 두 편을 이어 붙인 느낌이었을 거예요.
며칠을 고민한 끝에 찾은 답은 질문이었습니다.
김선태의 내면을 따라가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 독자에게 묻는 것.
설명이 아니라 질문으로 전환하니까,
독자가 '아, 이게 내 이야기이기도 하구나'를 스스로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남의 이야기를 떠드는 건 가십거리지만,
그 속에서 나를 찾는 경험은 eigen knot에서만 해줄 수 있거든요.
저는 바로 그 경험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에릭 호퍼의 통찰은 글의 뼈대가 되었지만,
처음에는 이름이 글 안에 여러 번 등장했습니다.
르네 지라르도, 보드리야르도 마찬가지였고요.
유식한 척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그런 이름이 나올 때마다 흐름이 끊겼어요.
"이 사람은 또 뭐야?" 생각하는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지니까요.
그래서 이름을 전부 뺐습니다.
대신 통찰만 남겼어요.
'욕망은 대상 자체에서 생기지 않는다. 누군가가 그것을 가진 모습을 보고서야 나도 갖고 싶다가 된다.'
이 문장 뒤에 르네 지라르의 이름이 없어도,
읽는 사람은 그 무게를 느낍니다.
이름이 권위를 부여하는 게 아니라,
문장 자체가 설득해야 하니까요.
같은 이유로 잘라낸 문장이 꽤 많습니다.
초고에서 세 번 반복되던 포인트를 한 번으로 줄이고,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는 두 단락을 하나로 합쳤어요.
글을 잘라내는 건 늘 아깝지만,
아까운 걸 남겨두는 건 게으른 거더라고요.
가장 오래 고민한 건 마지막이었습니다.
보통 이런 글은 결론으로 끝나요.
'그러므로 김선태는 이런 사람이고, 대중은 이런 심리를 가지고 있다.'
깔끔하고, 명쾌하고, 읽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면 끝.
그런데 그렇게 쓰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나요?
김선태를 분석하고 대중 심리를 해부하는 데서 글이 끝나면,
독자는 구경꾼으로 남아요.
'흥미로운 이야기군'하고 누군가 떠드는 썰을 듣고 떠나는 거죠.
그렇게 독자들은 자기의 삶을 대하는 태도마저 구경꾼이 되어버립니다.
제가 원한 건
이번 이슈를 통해 자신의 바라보는 거였어요.
결국 마지막을 질문으로 바꿨습니다.
당신은 왜 김선태에 열광하고 또 좌절하는가
왜 당신은 남의 일에서 의미를 찾고 있는가
답을 주는 대신 질문을 던지니까,
글이 닫히지 않고 독자의 머릿속으로 이어지더라고요.
이렇게 두 개의 글을 마무리하고 나서 깨달은 게 있어요.
eigen knot가 하려는 건 분석이 아니라 거울이라는 것.
누군가를 들여다보는 글이 아니라,
읽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는 글.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직접 써보니까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비로소 체감했습니다.
주제를 고르는 건 쉽습니다.
분석하는 것도 할 만해요.
제가 그걸 진짜 잘하거든요.
하지만 그 분석이 독자의 거울이 되게 만드는 건
정말 어렵더라고요.
그러니까 해야죠. 제가.
그리고 지금, 광고 단가 논란이 그 거울 위에 또 하나의 장면을 비추고 있습니다.
우연히라도 제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제 사건의 핵심을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뿌듯하네요.
1 knot — 사실은 부족했고, 악역은 필요했다: 심리학이 알려주는 충주맨 사태의 핵심
2 knot — "김선태 씨! 좋아하니까, 미워할게요" 유튜버 김선태와 대중 심리
eigen knot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제 목소리가 직접 담긴 유튜브도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