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서시>, 섬세함이 나를 괴롭힐 때

설 연휴, 자기비난이 나타날 때 꺼내 읽는 시

by 황준선

설 연휴,

가족 사이에서 괜히 예민해지는 사람도,

혼자 보내는 연휴의 고요함이 오히려 마음을 흔드는 사람도 있다.

오늘은 윤동주의 서시에서 한 문장을 꺼내,

섬세한 사람이 자기를 덜 몰아붙이는 법을 이야기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의 자취

1941년 11월, 연희전문 졸업을 앞둔 스물넷의 윤동주가 이 문장을 썼다.

시집을 내고 싶었다.

자기 손으로 쓴 시들을 한 권으로 묶고,

그 첫 장에 서문 대신 놓아둔 시.


우리가 「서시」라고 부르는 그 시는, 사실 제목조차 없던 글이었다.

누군가가 '시집의 서문이니까'라는 뜻에서 서시(序詩)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게 이름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말, 한글로 시를 쓰는 일은 조용한 저항이었다.

창씨개명이 강제되고, 학교에서 조선어 수업이 사라지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윤동주는 끝까지 한글로 시를 써 내려갔다.

결국 그는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해방을 불과 여섯 달 앞두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스물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 삶을 산 사람이 남긴 첫 문장이,

분노도 투쟁의 구호도 아니었다는 게 마음에 남는다.

그가 쓴 건,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바람처럼 느껴졌다.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 문장은 흔히 높은 도덕적 기준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없기를"이라는 어미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건 결의에 찬 다짐이라기보다 혼잣말 같은 소망이다.

완벽하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그렇게 살고 싶다는 기도.


같은 시 안에서 윤동주는 이렇게 고백하기도 한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은,

동시에 작은 바람 한 줄기에도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학자들은 이 대목을 윤동주의 가장 개인적인 고백이라고 본다.


부끄럼 없는 삶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할수록,

사소한 것에도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부끄러움의 크기는, 양심의 온도에 비례하는 법이니까.


서시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의 선언이 아니었다.

흔들리는 사람이 붙잡은 방향이었다.


섬세한 사람의 '자동 검열 시스템'

설 연휴, 오랜만에 가족을 만난다.

반갑다.

그런데 마음이 평소보다 예민해지는 걸 느낀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괜히 움츠러들고, 내가 한 말이 자꾸 밤에 떠오른다.


섬세한 사람의 머릿속에는 일종의 자동 검열 시스템이 돌아간다.

말 한마디를 하고 나서 "그게 맞았나" 되짚고,

행동 하나를 하고 나서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복기한다.


이 시스템의 출발점은 나쁘지 않다.

잘못을 줄이고 싶은 마음,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니까.


문제는 이 시스템이 24시간 꺼지지 않을 때다.

부끄러움 자체는 나쁜 감정이 아니다.

부끄러움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있다는 증거다.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러니 부끄러움이 올라올 때 진짜 물어야 할 건

"왜 이렇게 부끄럽지?"가 아니라,

"이 부끄러움을 어떻게 다루고 있지?"다.


윤동주도 부끄러움을 없애려 하지 않았다.

그는 부끄러움을 안고, 그 위에 "바람(소망)"을 얹었다.


기준이 아니라 방향.

채점이 아니라 지향.


그 차이가, 섬세함을 무기력이 아니라 깊이로 바꾸는 전환점이다.

시와 찻잔.jpg

연휴 연습

내가 나를 몰아붙이는 문장 하나를 적어보자.

"난 왜 항상 이 모양이지", "또 실수했네", "이것도 제대로 못 하면서"


누구에게나 자동으로 재생되는 문장이 있다.

그걸 적고 나서, 딱 한 단계만 낮춰서 다시 써보자.


"난 왜 항상 이 모양이지" → "오늘은 좀 힘들었다. 그럴 수 있다."

"또 실수했네" → "실수한 건 맞는데, 거기서 알아챈 것도 있다."


완벽하게 바꾸려는 게 아니다.

한 단계만 낮추는 것.


그게 윤동주가 보여준 방식이다.

선언이 아니라 바람,

완벽이 아니라 소망.


다음 편 예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 왜 "어마어마한 일"인지 — 정현종의 한 문장으로 이야기합니다.



이 시리즈가 마음에 닿았다면,

같은 결의 문장들을 더 모아둔 책이 있습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자꾸 미안해지는 사람,

다 괜찮다고 말하면서 혼자 삼키는 사람,

남들은 모르는 기준으로 자기를 채점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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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섬세하고, 독특하고, 완벽주의자인 당신을 위한 문장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