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곳이 사라진 사람끼리, 나란히 걸을 때 읽는 한 문장
식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았다. 밥을 먹는다. 반찬을 건넨다. 그런데 대화가 없다. 누가 먼저 입을 열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언제부터 이 식탁이 이렇게 조용해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오늘은 눈길 위를 걷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 서로 갈 곳이 다른 사람들이 나란히 걷다가, 잠깐 동안 가족이 되었던 이야기.
감옥뿐 아니라
세상이란 게 따지면 고해 아닌가
자취
황석영, 1943년 1월 4일 만주 신경(지금의 중국 장춘)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황수영. 해방 후 평양 외가를 거쳐 서울 영등포에 정착했다.
경복고등학교 3학년 때 단편 <입석 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입선했다. 심사위원들은 "이건 고등학생이 쓸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라며 놀랐다. 등단작을 읽은 첫 반응은 "40대 중년 남성의 작품 같다"였는데, 당선인이라고 나타난 건 빡빡머리의 고3이었다(이 장면이 가장 인상 깊어 이 작품을 선택했다).
자퇴서를 내고 남도 지방을 방랑했다.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참가했다가 유치장에서 만난 건설노동자를 따라 전국 공사판을 떠돌았다. 공사판, 오징어잡이배, 빵공장. 절에 들어가 행자 노릇도 했다. 해병대에 입대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제대 후 1970년, 단편 <탑>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산업화 시대 밑바닥 인생을 그린 중단편을 잇달아 발표했다. <삼포 가는 길>은 그가 직접 공사판을 떠돌며 본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룻밤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이후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었고, 1975년 이만희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이만희 감독의 유작이 되었다.
이 소설에는 세 사람이 나온다.
정씨: 교도소에서 목공과 용접을 배운 전과자.
출소 후 공사판을 떠돌다가 고향 삼포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나룻배와 감자밭이 있던 바닷가 마을, 그곳으로 돌아가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영달: 서른 남짓의 날품팔이 인부.
넉 달 머물던 공사판이 중단되자 밥값을 떼먹고 도망쳐 나왔다.
갈 곳이 없어서 정씨를 따라나섰다.
백화: 스물두 살이지만 서른이 훨씬 넘어 보이는 술집 작부.
열여덟에 가출해 술집을 전전하다 도망쳤다.
세 사람은 눈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걷게 된다.
목적지가 같아서가 아니다.
갈 곳이 없는 사람끼리, 눈밭에서 얼어 죽을 수 없으니까 나란히 걸은 것이다.
이 소설에는 긴 대화가 없다.
세 사람은 말이 없다.
대신 걷는다.
눈길을 걷고, 폐가에서 몸을 녹이고, 다시 걷는다.
영달은 발을 다친 백화를 업는다.
정씨는 걸음을 늦춰 동행을 기다린다.
감천역에 이르러 백화가 영달에게 고향으로 함께 가자고 한다.
영달은 거절한다.
대신 비상금을 모두 털어 차표와 빵, 삶은 달걀을 사서 백화에게 건넨다.
백화는 개찰구로 가다가 돌아온다.
젖은 눈으로 웃으며 말한다.
"내 이름 백화가 아니에요. 본명은요... 이점례예요."
가명을 쓰던 사람이 본명을 말하는 것.
그것이 이 소설에서 가장 긴 대화다.
함께 걸어준 사람에게만 건넬 수 있는 말.
식탁이 조용한 이유를 생각해 본다.
할 말이 없어서일까? 아니다.
서로 다른 곳으로 흩어져 살다 보니,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정씨와 영달과 백화도 그랬다.
말이 아니라 걸음으로 대화했다.
옆에 있어주는 것, 걸음을 맞춰주는 것, 빵 한 조각을 건네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이 말하는 대화의 방법이다.
정씨에게 삼포는 마음의 고향이었다.
교도소에서도 삼포를 생각했다.
감자나 매고, 나룻배로 고기나 잡고, 조용히 살 생각이었다.
그런데 감천역 대합실에서 노인이 말한다.
삼포에 공사판이 벌어졌다고...
바다 위로 신작로가 나고, 사람이 몰려들고, 나룻배는 더 이상 쓸 데가 없다 말한다.
"사람이 많아지니 변고지, 사람이 많아지면 하늘을 잊는 법이거든."
영달이 말한다.
"잘됐군. 우리 거기서 공사판 일이나 잡읍시다."
기차가 도착한다.
정씨는 발걸음이 내키지 않는다.
마음의 정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돌아갈 곳이 사라진 사람.
삼포가 변해버린 것처럼, 우리에게도 돌아갈 수 없는 식탁이 있다.
어릴 적 온 가족이 떠들며 밥을 먹던 그 식탁은 이제 없다.
식탁은 그대로인데, 그때 그 사람들이 달라졌다.
아이들은 자기 방으로 가버리고, 부모님은 말수가 줄었다.
정씨가 중얼거린다.
"감옥뿐 아니라 세상이란 게 따지면 고해 아닌가."
이 말은 체념처럼 들리진 않는다.
교도소에서 나와 돌아갈 곳을 찾아 눈길을 걸은 사람의 말이다.
감옥 안이나 감옥 밖이나 고생은 마찬가지라는 뜻이 아니라,
그래도 걸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삼포가 사라졌으니 다른 삼포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
"기차는 눈발이 날리는 어두운 들판을 향해서 달려갔다."
어두운 들판이다.
밝은 곳이 아니다.
그런데 기차는 달린다.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 황석영이 쓴 희망의 방식이다.
도착지를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멈추지 않는다.
식탁의 대화가 사라졌다면, 돌려놓을 수는 없다.
그때 그 식탁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식탁에서 새로 시작할 수는 있다.
정씨가 삼포 대신 다른 곳으로 간 것처럼.
백화가 본명을 말한 것처럼.
먼저 이름을 부르는 것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