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이 취소되면 사이코패스는 웃는다

메시지 전달 오류와 자기복제 점검하기

by 황준선

괴물을 비판하는 글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미 글은 빗나간 겁니다.

문제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극소수의 논리에 계속 양보하는 우리였으니까요.

논점보다 먼저 독해를 결정하는 건 구조라는 걸 배웠습니다.



08.

eigen knot의 글은 매번 같은 패턴을 밟습니다.

사건이 터지고, 대중이 반응하고, 저는 그 반응 아래 깔린 심리를 꺼냅니다.


충주맨이 퇴사했을 때, 인터넷은 “응원한다”와 “배은망덕하다”로 갈라졌어요.

저는 그 둘이 같은 심리라고 썼습니다.

내가 갖지 못한 자유를 대리로 사는 사람에게, 응원과 분노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광고 단가 유출 때도 마찬가지였죠.

공무원이었을 때는 “대단하다”던 사람들이

1억이라는 숫자 앞에서 “결국 돈이었네”로 돌아서는 걸 보면서,

1 knot에서 쓴 문장이 실시간으로 증명되고 있었습니다.


모텔 살인 사건이 터졌을 때는 모두가 “사이코패스”에 매달렸어요.

저는 다른 걸 봤습니다.

스무 살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약물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손에 넣었는지.

처방전 한 장이면 조심히 다루어야 할 약물이 15분 만에 손에 떨어지는 상황을 지적했습니다.


이번 글도 같은 방식이었습니다.

강북구 모텔 사건의 용의자, PCL-R 25점.

사이코패스 판정.


뉴스는 “괴물의 범행”으로 마침표를 찍었고,

대중은 그 마침표에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논리,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타인을 도구로 쓰고 규범을 건너뛰는 그 방식은

학교에 전화 한 통 걸어 수백 명의 수학여행을 없애는 민원의 논리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학생과 학부모 80%가 찬성한 수학여행이 사라지는 이유는 사고도, 예산도 아닙니다.

극소수가 항의하고, 나머지가 조용히 양보하기 때문입니다.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양보하는 우리가 문제라는 글이었어요.

eigen-knot-weekly-issue-004-youtube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사이코패스 무섭네요.”

“수학여행 없어지는 거 진짜 문제죠.”

“악성 민원 학부모 때문에 선생님들이 고생이에요.”


틀린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쓴 글은 그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이 글을 읽고 “저런 사람들이 문제지”라고 생각했다면,

그 반응 자체가 제가 쓰려던 현상의 일부입니다.


괴물을 지목하고 분노하면 편하니까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데 그 편함의 구조가 정확히 사이코패스적 논리를 용인하는 토양이라는 것,

그게 이 글의 핵심이었습니다.


좀 답답하더라고요... 분명하게 써 뒀는데 왜 못 읽지?

그러다 글을 다시 펼쳤습니다.


구조가 틀려 있더라고요.

글이 범죄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수면제, 치킨 22개, PCL-R 점수.

자극적인 디테일이 먼저 쏟아져요.


독자는 즉시 관찰자 모드로 전환됩니다.

이 모드가 한 번 켜지면,

중간에 “사실 이건 당신 이야기입니다”라고 써 놓아도 전환이 안 돼요.

관객석에 앉은 사람을 무대 위로 끌어올리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06화에서 1 knot를 쓸 때 배운 게 있었어요.

선언이 아니라 질문으로 전환해야 독자가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발견한다는 것.


그 원칙은 여전히 유효한데,

이번에는 더 앞단의 문제였습니다.


질문으로 전환하기 이전에,

애초에 독자를 관찰자로 앉혀 버리면 질문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게임이 끝나 있다는 것.


고쳐야 할 건 논점이 아니라 순서였어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게 있었습니다.

eigen knot을 쓰면서 제가 반복하는 패턴.


사회 현상을 가져오고, 심리학적 프레임을 얹고, “이건 당신의 이야기입니다”로 착지하는 구조.

충주맨 글이 그랬고, 자유의 짐 글이 그랬고, 모텔 약물 글도, 이번 수학여행 글도 그랬습니다.


같은 집을 계속 짓고 있었어요.

지붕 색깔만 바꾸고 가구 배치만 달리하면서 새집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찾은 건지, 자기 목소리에 갇힌 건지.

그 경계는 생각보다 얇습니다.



그런데 이런 글은 원래 발행 직후에는 잘 읽히지 않습니다.

경험적으로 압니다.

예전에 이슈를 다루는 글을 올렸을 때도 다들 갸우뚱했거든요.


그런데 몇 달 뒤 비슷한 논란이 반복됐을 때 그 글이 다시 돌았습니다.

원고 의뢰가 들어온 적도 있어요.


발행 당시에는 반향이 없던 글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값이 매겨지는 일을 몇 번 겪었습니다.


eigen knot이 다루는 심리는 뉴스 주기와 맞지 않아요.

사건이 터지면 대중은 표면을 소비하고,

그 아래의 심리는 사건이 잊힌 뒤에야 비로소 읽힙니다.


빠르게 소비되는 글이 아니라 천천히 발견되는 글.

그걸 알기 때문에 묵묵히 씁니다.


<수학여행이 사라지면 사이코패스가 나타난다>는 eigen knot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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