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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Nov 04. 2024

잠식

점차 침입하거나 차지하는 것

2024. 11. 4. (월)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났다. 다시 자 보려 했는데 이미 잠이 깬 것 같았다. 샤워를 하고 나와 출근 준비를 마쳤는데도 아직 컴컴한 꼭두새벽.


집을 나서기도 이른 시간이라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오랜만에 청소기 오수통도 비우고 스타일러도 돌리고 아이들 놀이방과 거실을 정리했다.


그 사이에 아내가 나와 월요일 새벽부터 무슨 일이냐며 고맙다고 했다. 그렇게 잠깐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 쓰레기봉투를 양 손에 들고 출근을 했다.


통근길은 1시간 반 남짓. 새벽 6시 반에서 7시 사이에 집을 나서야 한다. 학창 시절 내내 지각쟁이였는데 인천으로 이사 오고 나서는 오히려 지각이 없어졌다. 운동을 따로 하지 않아도 만 보는 거뜬히 걷고 새벽에 출근하는 다른 이웃 가장들(?)과도 안면을 텄다.




생각해 보면 우리네 삶은 항상 양면이 아닌가 싶다.


통근 시간이 길어 힘들다고 불평할 수 있지만, 그 덕분에 조용히 책을 읽고 이렇게 브런치에 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지하철 환승에 이리저리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헉헉대곤 하지만, 덕분에 따로 시간을 내어 운동하지 않아도 건강한 것이 아닐까 싶다.


추워져서인지 1시간이나 일찍 일어난 것이 못내 아쉬울 수도 있지만, 덕분에 아내의 월요일이 한결 가벼워질 만큼 집안일을 많이 덜어내 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에 뛰지 않고 천천히 지하철로 향하며 하늘도 보고 주변 이웃과도 인사하는 여유를 가졌다.




잠식.


점차 조금씩 침입하거나 차지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상황은 안타깝게도 대부분 우리가 선택할 수 없을 때가 많지만, 그에 대응하는 우리의 태도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매일 새롭게 마주하는 상황에 대해 불평과 불만에 잠식'당하며' 살지, 아니면 그 상황으로 인해 새로이 마주하게 된 다른 면을 바라보며 감사로 삶을 잠식'하며' 살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인천에서 서울로 통근하는 월요일 내 상황은 지난주와 전혀 바뀌지 않았고, 어찌 보면 톱니바퀴 흘러가듯 반복되는 일상 속에 다리도 아프고 지하철 안은 습하고 덥다.


그래도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한 시간 남짓 동안 불평보다 감사한 마음이 앞서고 보니 흔들리는 지하철이 그리 싫지 않다.


오늘은 나도 불평에 삶을 잠식당하지 않고 감사로 삶을 가득 잠식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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