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천동잠실러 Dec 20. 2024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

좋아함 + 존중 = 힘

2024. 12. 20. (금)


첫째 꿀떡이는 첫 돌이 갓 넘었을 때부터 책 읽어주는 걸 좋아했다.


말을 못 하던 그때는 가만히 듣기만 하던 아이가 두 돌이 되더니 책을 따라 읽기 시작하고, 세 돌이 되자 책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신데렐라가 왜 울었는지, 백설공주에 나오는 왕비가 왜 화를 냈는지 등. 그러더니 네 돌이 가까운 지금은 직접 연극을 하며 스스로 동화의 주인공이 되곤 한다.


그렇게 연극 놀이를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드레스를 입기 시작했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겨울왕국 등등. 사실 관리하기도, 입히기도 힘들어 부모인 우리는 가급적 새 옷을 사주지 않는데, 조부모님과 고모의 구매력(?) 때문에 이젠 옷 장 한 칸이 드레스 천지다.


반대로 둘째 찰떡이는 책보다는 자동차를 좋아한다.  


한 살 넘고부터 방바닥에 누워 자동차 바퀴를 구경하고 이리저리 굴리는 걸 한참 하며 놀았다. 두 돌이 가까워진 요즘에야 책을 한 두권 읽어달라며 가져오는데, 그마저도 자동차 책이다.


또 찰떡이는 춤추는 걸 유독 좋아해서, 신나는 율동만 나오면 '유똥!'이라고 외치며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난리도 아니다. 첫째 꿀떡이는 율동보다는 노래 (연극까지 하니 뮤지컬에 가깝지만)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둘째는 누굴 닮았는지 춤까지 관심이 많다.


부모가 골라준 것도 아닌데 첫째와 둘째가 좋아하는 놀이도, 책도 다른 것이 참 신기하다. 첫째가 그랬듯, 둘째도 커가며 좋아하는 것도 바뀌고, 그 방식도 조금씩 바뀔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이 좋다.


나는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는 현상이 그 자체로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좋아함'을 존중받고 인정받을 때, 무언가를 '좋아했던 경험'이 비로소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내력(耐力)이 된다고 믿는다.


초등학교 때인가. 아빠를 따라 프로농구를 보러 갔다가 농구에 푹 빠졌다. 당시 몸도 허약하고 운동이라고는 관심도 없던 내가 부모님께 농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당시엔 별말씀 없으시던 아빠가 주말에 자동차 트렁크에서 농구공과 농구 가방을 꺼내 건네셨다. 그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너무나 짜릿했다.


그날부터 난 농구에 미쳤다. 매일 밤낮 운동장에 나가 연습을 했고, 결국 동네 농구학원과 학교 농구부에서 주장이 되었다. 농구 사랑은 중학교 때까지 이어졌고, '농구 잘하는 아이'로 나름 명성(?)을 떨쳤다.


한창 공부해야 할 중학교 시기에 매일 4-5시간씩 공원에 나가 드리블과 슛 연습을 했는데, 엄마는 공부 안 하냐며 간간히 잔소리를 하셨지만 아빠는 아무 말씀 없으셨다. 지금 돌아보면 비록 프로농구선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때 그토록 좋아하던 농구를 원 없이 해서인지 소심했던 성격도 바뀌고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는 것'에 대한 기준도 생겼다.


내가 농구를 좋아한다는 것을 아빠가 인정해 줬을 때, 그 좋아하는 것을 잘하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고, 그 의지가 자연스레 '열심'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농구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원 졸업 후 지금껏 6년 동안 농구공을 잡아본 적도 없다. 시험, 결혼, 육아 등으로 삶이 바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긴 시간 동안 '농구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별로 안 드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특히 삼십 대 중반이 된 요즘 내 주변에 늦바람(?)처럼 게임이나 스포츠에 빠지는 또래 친구들을 보면 더 그렇다.


아마도, 어릴 적 좋아했던 농구는 이제 내 인생의 내력이 되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지금 와서 농구를 직접 하지 않아도, 어릴 적 농구를 '좋아했던' 그 기억, 그토록 좋아하는 농구를 '마음껏' 그리고 '열심히' 했던 기억 들은 아직도 생생하다. 농구를 하며 동네 형들이나 아저씨들과 친해지고 같이 어울리며 성격도 활발해졌고, 이후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을 때도 '잘은 모르지만 일단 농구하듯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4-5시간씩 무식하게 공부하는 끈기도 배울 수 있었다.


엉뚱하게도, 그토록 좋아하던 농구를 맘껏 해본 기억은 그 이후 나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요즘 퇴근하고 집에 가면 꿀떡이는 공주 드레스를 입고 책을 읽다 연극을 하고, 찰떡이는 빠방(자동차) 놀이를 하다 벌떡 일어나 율동을 하자고 한다. 귀엽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또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 앞으로 바뀔 것을 생각하면 또 재미있고 흥미롭기도 하다.


앞으로 이 아이들이 커가며 무언가를 좋아하고 빠져들 때, '그건 별로인 것 같다'라거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라고 그 힘을 꺾지 않겠노라 다짐해 본다. 오히려 그것을 존중해 주고 마음껏 좋아해 볼 수 있도록 기다려주려 한다.


그 '좋아함'을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에 대해서 이해하고, 무언가를 좋아할 때 사람이 얼마나 큰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깨닫고, 무엇보다 그 좋아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삶의 가치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 그래서 이 아이들의 '좋아함'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 아이들의 '내력'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내력을 길러주는 존중을 심어주고 싶다.


아 참. 나중에 엄마한테 들은 것인데, 중학교 때 농구만 하러 돌아다니는 나를 보고 아빠한테 '당신은 쟤가 걱정 안 되냐'라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하셨다고 한다.


"지금 농구하는 게 좋고 행복하다잖아. 부모가 애 행복하게 해 주면 그걸로 된 거지."


아직까진 좋아하는 대상에 아빠가 있어서 다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